【문화리뷰】 추억의 장소에서 받은 ‘새의 선물’

백마 화사랑 ‘문화산책하는 날’-은희경 북콘서트

유성문 주간 승인 2021.05.10 11:29 | 최종 수정 2021.06.11 00:57 의견 0

청춘이 있는 곳, 청춘을 잇는 곳

완전히 헤어진다는 것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을 정지시킨다. 추억을 그 상태로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다. 이후로는 다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간에 의해 지나간 시간의 기억이 변형될 염려도 없다. 그러므로 완전히 헤어짐이야말로 추억을 완성시켜준다. -은희경 <새의 선물> 중에서

4월 29일, ‘책방이듬과 함께하는 백마 화사랑 문화산책하는 날’ 첫 번째 초대손님은 은희경 작가다. 이날 행사는 작가의 첫 소설책 <새의 선물> 100쇄 기념을 겸한 북콘서트로 꾸며졌다. <새의 선물>이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1995년 무렵 일산으로 이주한 작가에게는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운 자리다.

“여기 이 공간을 아주 좋아했었어요. ‘했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한동안 이곳을 와보지 못했기 때문인데, 오늘 와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모든 것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듯해서.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그 해 3월 일산으로 이주해 본격적인 작가생활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그 전부터 이곳이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저 역시 자주 드나들었지요. 지금도 기억나는 건 저 입구에서 책을 팔았었고, 또 2002년 월드컵 때 경기에서 이기고 너무 흥분되어 친구들과 함께 여기 와서 막걸리를 실컷 먹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문화산책이 있던 날, 백마 화사랑에 봄꽃이 피었다. 추억 속 청춘의 그 봄날처럼.

콘서트는 행사가 열린 장소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작가의 기억에 혼동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아는 ‘화사랑’은 1979년 영업을 시작한 이래 1980~90년대를 풍미한 백마역 앞 카페촌의 대명사였던 곳이고, 지금 ‘백마 화사랑’ 간판을 단 곳은 2019년까지 풍동 애니골 입구에서 ‘숲속의 섬’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했던 찻집이다. 두 곳 다 백마역 앞에서 시작했지만 1990년대 중반 도시개발에 밀려 애니골로 옮겨왔고, ‘화사랑’은 2016년 무렵 아예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양시가 2020년 ‘백마 화사랑’을 시 상징건축물로 지정할 때부터 혼동은 예비되어 있었다. 처음 상징건축물을 지정·발표할 때만 해도 ‘백마 화사랑’이란 명칭 뒤에 ‘숲속의 섬’을 괄호 안에 병기했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숲속의 섬’이라는 명칭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리모델링을 거쳐 시민공간으로 재탄생한 지금에는 ‘백마 화사랑’만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청춘이 있는 곳, 청춘을 잇는 곳’이란 부제와 함께.

아무리 한 시대의 랜드마크였던 ‘화사랑’의 명성에 기대고 싶었어도 엄연히 다른 공간인(그것도 나름의 정체성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숲속의 섬’을 한순간에 ‘백마 화사랑’으로 탈바꿈시킨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대해 고양시 관계자는 “청춘들의 추억을 상징하는 공간의 의미를 고려한 새로운 네이밍으로 이해해 달라”고 답변했다지만, 그것이 ‘상징문화’도 아니고 ‘상징건축물’임에야 그 해명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1980년대 청춘들에게 ‘화사랑’의 열기는 대단했다. 시대에 목마른 젊은이들은 경의선 신촌역에서 40분 남짓, 백마역에 내리면 뛰듯이 철길을 걸어 ‘화사랑’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미 몰려든 젊음들이 왁자지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실내는 통기타 음악의 열기로 넘쳐났다. LP판이 가득 찬 벽면 한쪽으로 김지하의 시가, 천상병의 시가 빼곡했다. 문인 기형도, 김소진 등이 사랑했던 장소이고, 강산에, 윤도현들이 음악에의 꿈을 키웠던 곳이다. 작가가 말한 장소는 구체적 공간의 혼동이었을까, 상징적 공간의 혼용이었을까. 아니면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아직 ‘추억을 완성시켜줄 완전한 헤어짐’을 이루지 못한 것일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 1969년 겨울, 나는 조그만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목록을 지우고 있었다. 동정심, 선과 악, 불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약속…. 마침내 목록을 다 지운 나는 내 가운데손가락 마디에 연필 쥔 자욱이 깊게 파인 것을 한참동안 내려다보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인간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나는 뭔가를 쓰다가 이따금 연필을 내려놓고 가운데손가락 마디의 옹이를 한참 내려다보곤 한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은 삼십대 중반을 넘긴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액자소설이다. 남도지방의 어느 소읍, 우물을 중심으로 두 채의 살림집과 가게채로 이루어진 ‘감나무집’에서 외할머니에 의해 길러지는 진희는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펼쳐지는 삶의 숨겨진 애증을 엿보거나 사람 사이의 허위를 들추어낸다. 조숙한 열두 살 소녀 진희의 시선은 삶의 진실은 무엇이며,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가져다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자크 프레베르 <새의 선물> 전문

작가는 먼저 ‘소설 속에 새가 등장하지 않는데 왜 제목이 <새의 선물>인지’하는 질문에, 책에도 나와 있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를 다시 들려주었다. 처음 <연애대위법>이었던 소설 제목을 바꾸기 위해 고민하던 중 프레베르의 시가 눈에 띄었고, 그것이 자기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형상적으로 잡히는 것 같아 제목으로 붙이게 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콘서트가 끝나고 작가는 독자들이 가져온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해주었다. 위로가 절실한 시대, 그는 또 다른 ‘새의 선물’이었다.

작가는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새의 선물>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이었다. 1997년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 1998년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2000년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래 전 어떤 소설집 말미에 ‘소설가의 삶이 소설을 만든다. 나는 재미있게 살아서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왜냐면 오디션을 통과했으니까’라고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처음으로 소설가의 삶을 동경하게 된 계기가 은희경 작가님을 통해서였어요. 이후로 재미있게 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쭉 지켜보아왔고, 재미있게 잘 사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어요. 1990년대에서 훌쩍 시간이 지난 지금, 2021년 소설가의 삶은 어떠신가요.”

또 다른 독자의 애정 어린 질문에 작가는 따뜻한 미소로만 화답했다. 그 미소 속에는 유년시절부터 작가를 꿈꿔왔다는 작가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삶 속에 뿌리내려올 수 있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배어있는 듯도 했다. 최근에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 네 편을 묶어 새로운 소설집을 내놓기 위해 준비 중이란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 대한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제가 어떤 책에서 ‘막연하게 잘 될 거야 하는 그런 무책임한 희망의 말이 우리를 오답에 적응하게 한다’고 쓴 적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런 시기가 너무 오래 가다보니 저 역시 굉장히 무기력해지고, 더 나쁜 건 여기에 자꾸 적응하면서 삶의 범주가 좁아드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비록 ‘무조건 잘 될 거야’ 하는 말은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지금 이 시간을 우리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기회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책도 읽고 그림도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언젠가 문이 열리면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달려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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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듬과 함께하는 백마 화사랑 문화산책하는 날’은 4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마지막 목요일 열린다. 고양지역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를 초청하여 다채로운 문화예술 향연을 시민들과 공유함으로써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을 위로하며 활력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책방이듬’은 미국번역가협회 전미번역상 및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수상한 김이듬 시인이 운영하고 있는 동네책방의 이름이다. 2017년 10월부터 2021년 4월까지 63회에 걸쳐 ‘일파만파 낭독회’와 ‘저자와의 만남’등의 행사를 진행하며 명실상부한 지역문화운동의 성공모델이 된 곳이다. 문화산책은 김이듬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다.

고양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매회 사전 신청(http://naver.me/FqS4JORo) 및 추첨을 통해 선정된 15명의 시민을 한정 초대하는 한편, 입장객에게 마스크 착용, 발열 체크, 손소독제 사용, 안심콜 통화, 띄어 앉아 착석하기 등의 방역수칙을 안내하고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다. 행사는 고양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된다.

5.27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_정민아·이상진(ESP) 뮤지션 초청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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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 마른 잎 다시 살아나_영화감독 조민호 함께하는 한여름밤의 시네마천국

8.26 바닥에 절하다_이재훈·기혁 시인 초청 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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