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고양】 봉양(奉養), 그 보다 양지(養志) - 피칠갑 어머니와 집 구하기 대작전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승인 2021.05.24 13:17 | 최종 수정 2021.05.25 08:20 의견 0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어머니는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피 나는 코를 세게 풀면서) 얼굴에 피가 튀었고, 웃옷에도 흘렀다. 뿐인가. 베개에도, 자고 일어나 앉은 이부자리에도 덕지덕지 피딱지가 있었다. 침대에도 묻고 바닥에도 있었다. 침소 옆에 놓아둔 좌변기 안에도 흥건하게 벌건 물이었다. 코를 그렇게 파대면 피할 도리도 없는 일이었다.

아들들이 뾰족한 모든 걸 치워놓은 다음에도 그 일은 멈추지 않았다. 천 원짜리 지폐를 말면 코에 깊숙하게 들어갔다. 귀이개를 빼앗으면 연필로, 연필을 빼앗으면 이쑤시개로…. 여든둘의 (치매 증상) 할머니가 그렇게나 빠를 수 있고, 그렇게나 다양한 방법으로 코를 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면봉으로 하면 나을까 싶었는데, 온통 ‘험한 물건들(가위나 쇠젓가락 같은 것도)이 코안으로 들락날락한 결과였다. 작은 의원을 거쳐 큰 병원에 가서 코를 지진 다음 겨우 진정이 되었는데, 며칠 후 다시 코를 판 것이었다.

데이케어센터에 연락했다. “오늘은 등원하기 어렵겠습니다.” 가보아야, “병원에 모시고 가라!”는 요청이 돌아올 게 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코피가 줄줄 나는데, 나 몰라라 보내드릴 수도 없었다. 그날 일을 모두 제끼고 어머니 코피를 멈추려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비 오는 대로변 건물에 주차(엄청 비싸다)한 뒤, 2층 병원에 간신히 올라갔다. 늙은 의사가 “또 오셨구만!” 했다. 임시방편으로 멈춘 코피를 처리하기 위해서 그다음 날에 첫째와 막내가 어머니를 큰 병원으로 모셨다. “코를 계속 파면, 방법이 없습니다.” 병원이 호텔이나 카페처럼 꾸며졌다는 그 큰 병원 의사의 전언이었다.

결혼해 모두 따로 사는 아들들이 어머니 문제로 모였다. 4형제(며느리로 확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었다)였다. 10여 년 전 남편이 죽은 후 혼자 사는 어머니는 3년여 전쯤 치매 진단을 받았다. 데이케어센터에 네 아들이 번갈아 ‘송영(送迎)’을 했다. 직장서 일을 마치고 퇴근을 어머니 집으로 했다. 저녁을 살펴드리고, 아침에 어머니를 깨워 식사를 차려드리고(아이 유치원을 보내듯) 차에 태우는 일을 2년여째 반복하는 중이었다. “어머니를 회사 가까운 데서 모시겠다!”라고 첫째가 말했다. 막내가 일하는 곳과도 가까웠다. 두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는 중요한 축이었으니, 반대는 없었다(둘이 먼저 편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머니 모실 집을 구하는 데 또다시 형제들이 모였다. 인터넷을 통하거나, 직접 회사 가까운 곳 부동산에 무작정 들어가 방을 찾는 식이었다. 그런데 돈이 넉넉지 않았다. 아파트는 불가. 2층은 불가. 어머니가 일곱 계단쯤을 오르내리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결국 반지하 빌라 같은 곳만 가능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다. 평생을 살아온 이 집에서 거처를 옮기면 치매가 악화되지는 않을까? 만약 길을 잃는다면? 현재의 집 근처엔 어머니의 상황을 아는 이웃들이 있었다. 새로 이사 가는 곳엔? 데이케어센터는 있을까? 1년여간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사 계획은 접을 수 밖에....

어머니는 왜 코를 파는 걸까? 코에 무엇인가 들어 있고, 그걸 파낼 수 있다고 어머니는 믿었다. “그게 아니라고, 그러지 마시라!”고, 아들들은 그저 이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머니? 왜 그러셔요? 무슨 다른 답답한 일이 있으셔요?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자 그동안의 아들들이 해온 일들이 떠올랐다. 아들들은 봉양(奉養)을 성실하게 해왔지만, 어머니 상태를 잘 살펴 양지(養志)를 해온 건 아니었다.

아들들은 갈 때마다 장을 보고, 새 음식을 갖고 갔다. 침소에 소파 곁에 사탕이며 군것질거리를 놓아드렸다. 화장실에 가는 걸 불편해하시자 바로 방안에 이동식 좌변기도 놓아드렸다. 그 결과는? 어머니는 평생 가져본 적이 없는 배둘레햄을 두르게 되었다. 몸이 무거워진 어머니는 점차로 활동반경이 줄었는데, 화장실까지 침대 곁에 있게 되자 거동 자체가 없어졌다. 대소변 지린내가 차츰 방에 스몄다. 어떤 때는 그 냄새와 그 무료함을 견딜 수 없지 않았을까? 그러면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을까? 코를 파는 강박은 그런 데서 온 건 아닐까?

어머니에게 양지(養志)란 무엇이었을까? 정말 필요한 게, 고기반찬과 제때의 밥이었을까? 홀로도 자신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자활이 더 필요하진 않았을까? 후자라면 매번 어머니는 안전한 그러나 적절한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워야 했다. 간소한 식단으로 몸을 가볍게 하고, 인지의 활력을 돋우는 대화와 책 읽어 드리기, 마음에 맞는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기가 일상이 되어야 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도록….

치매는 ‘인지적 문제로 일상을 이어갈 수 없는 상태’다. 핵심은 ‘일상’이다. 외부의 더 많은 봉양자와 시스템 공급 대신에, 어머니가 삶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양지(養志)’로의 전환이 절실했던 것이다. ‘피칠갑 어머니’와 ‘집구하기 대작전’에서 네 아들이 얻은 소중한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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