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물고기】 2-동암, 그리고 서암

혜범 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1.06.08 20:48 | 최종 수정 2021.06.14 14:57 의견 0

그림 : 정운자/시인ㆍ수채화가

"어디를 갔다 왔는가?”

"동암(東庵) 스님을 친견하고 왔네."

"동암 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오줌싸개 어린 놈 취급을 하시더라고."

"어떻게?"

"구상유취하니 서암(西庵)에나 갔다가 내일 오라고."

"조리돌림이 원래 노장들 특기 아닌가. 그래 어쩔 셈인가?"

"내일까지 갈 게 뭐 있는가. 걸망 싸들고 올라가려고."

"…이 밤에 올라가서 뭐 하려고? 가면 쫓겨날 텐데."

"방구들 깔고 누워 잔들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쫓겨나면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면 되지."

학인(學人)은 걸망을 맸습니다. '자네 미친 거 아닌가?'소리를 들으며 공양간에 가서 쌀 반 말을 얻어 동암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학인은 산을 오르며 나뭇가지들을 주웠습니다. 가사 장삼 발우, 그리고 쌀이 반 말 든 걸망은 앞에 매고 칡을 잘라 끈처럼 한 짐 되도록 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동암에 다다랐습니다.

"스님, 스니임."

가부좌를 틀고 방 안에 앉아계시던 노스님이 방문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이 밤에 오셨는가?"

"주인 되려 왔습니다."

"그럼 나는 무엇이냐?"

"손님입니다."

"밧줄도 없이 스스로를 묶고 있구나. 그래, 그 등에 진 나무들은 무엇이냐?"

동암 노스님이 뜻밖이라는 듯 학인을 보고 물었습니다.

"거친 풀을 두고 호미질을 안 하신 거 같아서."

"입을 열면 벌써 틀린다. 아궁이에 불을 넣고 오너라."

학인은 속으로 '아싸' 하고 노스님의 방에 불을 넣고 달빛 쏟아지는 헛간에 앉았습니다. 동암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방 하나 부엌 하나, 그리고 공양간 옆에 이슬을 피할 수 있는 헛간과 같은 곳이 있었습니다.

학인은 그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노사(老師)의 '불 때고 오라'는 말씀을 어겼습니다. 보나마나 '불 다 땠으면, 내려가라' 하실 그 언어와 문자에 붙잡힐 학인이 아니었습니다.

"공연히 내 집을 버리고 남의 집으로 찾아 헤매고 있었네."

헛간에 숭숭 뚫린 하늘엔 달과 별들을 보며 중얼거리던 학인은 작은 행복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혜범 스님은 1976년에 입산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으로 등단했다.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문학세계사에서 <소설 반야심경>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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