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 들리지 않는 북소리

_고도 아닌 고도, 백령도

유성문 주간 승인 2021.06.10 22:56 | 최종 수정 2021.06.10 23:14 의견 0

인천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장장 200Km에 이르는 뱃길을 4시간이 넘게 달려간다. 백령도는 그렇게 멀기만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뭍(북한의 장연)에서 겨우 15Km 남짓한 짧은 거리. 새벽이면 바다 건너 장산곶에서 닭 우는 소리가 선연히 들려오는 곳이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인간의 쓰라린 역사가 빚어낸 부질없는 길, 최악의 구간 설정을 타고 지루하게, 에둘러서 찾아든 백령도. 그러나 단절과 대치 속에 백령도는 절해고도 아닌 절해고도로 남아 있게 되었으니, 그 처한 상황이야 어떠하든 때 묻지 않은 비속성(非俗性)으로 우리에게 보답한다.

용기포선착장 ⓒ유성문(2004)

장산곶매와 심청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임 생각나누나 -‘몽금포타령’

백령도 이야기는 어차피 <장산곶매 이야기>로 시작된다.

옛날 장산곶에는 장수매가 살고 있었다. 의로운 정기를 지닌 장수매는 주변의 약한 동물들을 괴롭히지 않고 일 년에 두 번 중국 대륙으로 사냥을 나갔다. 혼신을 건 싸움에 나서기 전, 장수매는 결연하게 자기가 살던 둥지를 부리질로 부수어버린다. 그 부리질 소리가 ‘딱- 딱-’ 하고 들리기 시작하면 마을에는 풍년과 풍어가 찾아들었다.

어느 날, 대륙의 침략자 수리 떼와 맞서게 된 장수매는 마을사람들의 힘찬 응원을 받으며 우두머리 수리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마침내 수리의 날개를 쪼아 떨어뜨렸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수백 발이 넘는 먹구렁이가 쳐들어오고….

어느덧 장산곶 마루엔 북소리가 요란했다. 매는 침략자를 무찌르기 위해 북소리 따라 캄캄한 밤하늘을 쪼아 길을 밝히고, 전령은 나는 듯 말을 달려 이 소식을 전하고, 봉우리마다 봉화가 이어 붙고, 이물패는 저 넓은 들로 내어달린다.

심청각 ⓒ유성문(2004)

민족혼을 일깨우는 웅대한 <장산곶매 이야기>와 함께 백령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심청전>이다.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와 빠져 죽었다는 인당수가 바로 백령도 앞바다다. 뿐만 아니라 심청이가 연꽃으로 환생하여 돌아왔다는 연봉바위도 지금껏 남아 있다. 백령면에서는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심청각을 짓고 효 사상을 고양하겠다고 나섰지만, 광한루의 춘향각을 본 떠 지었다는 심청각은 영락없이 번듯한 중화루 건물 같은 모양새여서 그리 볼만한 것은 못된다.

심청각을 둘러본 후 마침 백령도 주둔 해병대의 OP를 올라볼 기회가 있었다.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간 OP에서는 백령도 일대가 확연하게 내려다 보였다. 멀리로는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 땅 장연반도의 산마루들이 아련했고, 발밑으로는 연병장을 구보하는 해병대의 기운찬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면 이곳은 바로 서해교전이 벌어졌던,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현장. 그때 침몰한 아군 함정의 이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참수리호'였다.

백령도 OP ⓒ유성문(2004)

장산곶의 드높은 하늘 위로 힘차게 솟아오르는 장산곶매와 처연하게 가라앉은 참수리호. 그 뭍의 바다이면서도 그 뭍의 바다일 수 없고, 그 바다의 뭍이면서도 그 바다의 뭍일 수 없는(북한 영해, 남한 관할) 이 기괴한 현장에서 부질없는 생각들은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흩어지기만 하는데, 산마루를 타고 오르는 바닷바람 속에 끝내 그리운 북소리는 묻어오지 않았다.

두무진과 중화동 교회

백령도 관광의 백미는 역시 두무진이다. 마치 장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두무진(頭武津). 누구는 홍도와 태종대를 합쳐놓은 듯하고, 누구는 해금강의 총석정을 옮겨 놓았다고도 하는 기암절벽으로 가득한 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에 약 2Km에 걸쳐 절경을 이루고 있다. 통일기원비가 세워진 곳으로 해서 육상으로도 둘러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두무진의 진면목을 보려면 유람선을 타고 해상관광에 나서야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는 이대기가 ‘늙은 신의 손끝에서 나온 마지막 작품’이라고 격찬해마지 않은 선대암을 기점으로 물개바위, 말바위, 대감바위, 남근바위, 병풍바위, 쌍굴바위, 촛대바위 등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특히 물개바위는 이제 막 찾아들기 시작한 물범들의 서식처다. 많을 때는 400여 마리까지 몰려다니는 물범들은 종종 물개바위 위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며 해상관광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이한 것은 깎아지른 벼랑 위에 들어선 군사시설물들이다. 마치 ‘나바론의 요새’ 같이 암벽을 뚫고 자리한 참호하며, 암봉의 꼭대기까지 들어선 초소들의 모습은 이곳이 어쩔 수 없는 분단의 현장임을 실감케 한다.

중화동교회 ⓒ유성문(2004)

두무진을 빠져나와 연화리 쪽으로 길을 잡으면 중화동교회가 나온다. 남북한 통틀어 세 번째, 남한에서는 두 번째로 1898년에 세워진 교회라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시골 교회에 불과하다. 하지만 선교 초창기에 들어선 이 교회 덕분에 백령도에는 일찍이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았고, 지금은 백령도 주민의 80%가 기독교 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콩돌해안과 사곶해수욕장

백령도만의 특이한 자연환경으로 콩돌해안과 사빈이 있다. 둘 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남포리 오군포 남쪽 해안을 따라 약 1Km 가까이 형성되어 있는 콩돌해안은 백령도의 지반을 이루고 있는 규암이 바닷물의 파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콩과 같이 작고 둥근 자갈들로 이루어져 있다.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백색, 갈색, 적갈색, 청회색 등으로 형형색색이어서 보기만 해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맨발로 해변을 거닐면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콩돌의 감촉이 색다르며,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콩돌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내는 해조음도 귀를 마냥 즐겁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이곳의 콩돌들을 마구 집어가는 바람에 심각한 훼손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나서서 콩돌의 반출을 감시하고 있는 지경이 되었다.

콩돌해안 ⓒ유성문(2004)

백령도의 관문인 용기포 주변에는 사빈으로 유명한 사곶해변이 있다. 석영으로 이뤄진 단단한 암석인 규암이 오랜 시간 동안 잘게 부서진 규사토로 만들어진 3Km에 이르는 백사장은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을 정도여서,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없다는 천연비행장이다. 하지만 전시도 아닌 지금은 백령도에 비행기가 뜨고 내릴 일도 별로 없으니, 지금은 현지민의 운전연습장이나 관광용 찻길로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백령도는 생각보다 아기자기한 섬 정취와 천혜의 자연경관을 맛볼 수 있는 곳이어서, 2~3일쯤 푹 쉬었다 올 수 있는 무공해 여행지로서 손색이 없다. 다만, 아직도 긴장이 가시지 않은 접적지역인 만큼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제주도행 저가항공 요금보다 비싼 운임도 백령도 여행의 최대 난적. 무엇보다 지리적 거리보다 더 멀게만 느껴지는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사곶해변 ⓒ유성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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