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별곡】 어떤가, 몸이여

유성문 주간 승인 2021.06.11 22:19 | 최종 수정 2021.06.11 22:21 의견 0

노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_시집 <노숙>(현대문학,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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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교회 쪽문 계단에 이방의 노숙자 하나 뉘여 있다. 언뜻 태생도 나이도 가늠키 어려우나 그 곤고함만은 알겠다. 길 위의 잠이니 꿈조차 끝도 없이 떠돌겠구나. 한참을 바라보는 내 마음 쓸쓸하고 아득하여 그 누운 자리 밑 온기마저 그리웁다. 그 몸 나와 다르지 않으니 구천을 넘어, 도솔천을 넘어 덧없이 헤매이겠구나. 어떤가, 몸이여. 나 역시 그에게 물어보지만 몸은 이미 잠이 들었다.

PS. 김사인 시인은 6월 24일 백마화사랑에서 열리는 ‘문화산책하는 날’에 초청되어 낭독회 및 특강을 갖는다. 주제는 ‘밤에 쓰는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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