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별곡】 이 고해가 극락이라니

유성문 주간 승인 2021.07.11 08:37 | 최종 수정 2021.07.11 15:57 의견 0

세속사원

복효근

집 밖에서 집을 보네

밤이 새벽으로 건너가는 시간

금성이 춥게 빛날 때

울다 잠든 아내 두고

집 밖에서 퀭한 눈으로 내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네

저 칸칸이 토굴 같은 시커먼 아파트 덩어리

모래와 시멘트로 뭉쳐진 커다란 산

저 속에서

그만 살 것처럼 사랑하고

또 다 산 것처럼 싸우고

옷 벗고 뒹굴고 또 옷 입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나날을 최후처럼 살았네

불현듯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

돈황의 막고굴이 떠올랐다네

커다란 산에 층층이 동굴을 뚫고 수도승들은

화엄세계를 새겨 넣으려

굴 밖에 거울을 세워두고 빛을 반사시켜 들여서

몇 십 년 몇 백 년 작업을 했다지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그들에게 차라리

내가 버리고 싶은 이 사바가 극락쯤은 아니 될까

그래, 나의 이 고해가 극락이라니

목말라 물을 찾다 밤새 술만 들이켰던 그곳이 우물터였다니

수많은 생불들이 불을 켜는 새벽

나 옷깃 여미고 저 사원으로 돌아가겠네

_시집 <마늘촛불>(애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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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녘이나 저물녘, 집 밖에서 집을 보는 일은 처연하다. 아니, 비장하다. 마치 회사 밖에서 회사를 보는 것처럼. 고요한 집은 언뜻 선퇴(蟬退)와도 같은데, 그를 보는 일이 하염없이 버거울 때가 있다. 사는 일이 매양 허울을 뒤집어쓰고 사는 것과도 같건만, 때로 그 속은 생떼처럼 소란스럽다. 그렇더라도 다시 옷깃을 여미고 돌아가야 한다. 사바에서 사원으로. 거기 비구니 한 분이 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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