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물고기】 6-문(聞)이 불문(不聞)이요…
문(聞)이 불문(不聞)이요 불문(不聞)이 문(聞)이며, 문(聞)이 문(聞)이요 불문(不聞)이 불문(不聞)이로다
혜범 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1.07.14 09:00 | 최종 수정 2021.07.2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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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그림 : 정운자/시인ㆍ수채화가
“스님.”
“그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스님은 늙은 소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일각은 돌아섰다. ‘그 어떤 물건이 가는가?’라고 노스님이 묻지 않았다.
들은 것이 들은 것이 아니고 듣지 않은 것은 들은 것이며, 들은 것은 들은 것이고 듣지 아니한 것은 듣지 않은 것이다.
일각이 다시 노스님에게로 다가갔다. 가을바람이 불어와 소나무 가지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점심은 뭐 드시고 싶으세요?”
“내 입이 있어 아직 쓸 곳이 있구나. 점심 공양에는 칼국수 좀 만들어 삶아봐라. 너의 본래면목을 보고 싶구나.”
“…네?”
“소 한 마리 잡아 총 네 그릇을 만들어라.”
“…네? 어디 가서 소를 잡죠?”
“이놈아, 색꾼놈아. 네 본분소식(本分消息)을 알려면 본분사(本分事)를 밝혀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노스님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일각은 “웬 국수? 소를 잡아넣으라니?” 두 사람밖에 없는데 뜬금없이 네 그릇을 준비하라 하니 어리둥절했다. 일각은 헛기침을 삼켰다.
천지보다 먼저 한 것이 나요. 천지보다 뒤에 한 것도 나다. 그러나 그 시점과 종점은 끝내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일미(一味)란 본래면목(本來面目)이요, 수미(殊味)란 양생면목(孃生面目)일 것이다. 본래면목이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선천적인 자기의 본래 마음이면, 양생면목은 처음도 있고 끝도 있는 후천적인 인생일 터이다.
젠장, 국수와 본래면목이 무슨 상관이람. 누가 처무애고(處無碍故, 사는 곳에 장애가 없음)요, 시무애고(時無碍故, 때에 따라 장애가 없음)라 했던가. 까탈스런 노인네, 밥상도 차려주지 않았는데 다 잡수시고 수염 쓰다듬는 소리만 내지르시다니.
일각은 입맛을 쩝 다셨다. 느낌표는 주시지 않고 물음표만 주시다니. 눈이 밝아지면 모두가 다 진여이지만, 눈이 어두우면 모두가 다 무명인 것이었다.
네 그릇을 준비하였다 해도 방망이를 맞을 것이고, 네 그릇의 국수를 준비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방망이를 맞을 터이니, 네 그릇의 국수를 삶기 위해 넓은 그릇에 밀가루, 들깨가루, 콩가루를 넣고 소금을 한 숟갈 넣은 뒤 물을 붓다가 ‘각(覺)과 불각(不覺)’이라 하며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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