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高陽)’은 ‘높은 볕’이다. 그 높은 볕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건 대부분 오래된 나무들의 우듬지다. 그 나무들은 ‘고양 600년’ 역사 속에 때론 푸름을 더하고, 때론 너른 그늘이 되어왔다. 숱한 세상 풍파를 거치면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 그 인고의 세월을 통해 이제는 어엿이 ‘고양의 역사’가 된, 오래된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송포 백송
일산서구 덕이동에 위치한 송포 백송은 고양시 유일의 천연기념물이다.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 고양군 송포면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송포 백송(松浦 白松)’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백송은 중국 북부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중국 당나라를 드나들던 사신들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실지 송포 백송도 처음에는 ‘당송(唐松)’으로 불리었다.
전하는 바로는 조선 선조 때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유하겸(兪夏謙)이 중국에서 온 사절로부터 묘목 두 그루를 받았는데, 탐진 최씨 일가에서 그 중 1그루를 받아 집안 묘지 주변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또 세종 때 김종서가 개척한 6진(六鎭)에 복무하던 최수원(崔壽元) 장군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져와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현재 송포 백송이 위치한 토지의 소유자가 탐진 최씨 정민공파 종친회이고, 최수원 장군 역시 탐진 최씨인 것도 두 이야기의 근거가 되어주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송포 백송의 수령을 25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만 일부에서 500년이 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 교목으로,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떨어져 줄기 전체가 흰빛을 띄는 특징이 있어 예로부터 ‘백골송(白骨松)’으로 불리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백송은 번식력이 약하고 더디게 자랄 뿐 아니라 증식이 어려워 집단 식재를 할 수 없는 탓에 주로 독립수로 자란다. 더구나 소나무 종류는 자가 수정을 싫어하기 때문에 독립수로 있는 나무는 수정이 잘 안 되고 종자도 쭉정이가 대부분이라 양묘하기가 어렵다. 중국에서 들어온 지 오래되었음에도 희귀수종이라는 것은 이 나무의 증식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국 각지에 있는 오래된 백송은 대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백송은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 있는 600년 수령의 백송과 수송동 조계사 내 백송, 그리고 경기 이천과 충남 예산에 각각 한 그루가 있다. 서울 용산에 있던 백송은 나무의 수령이 다해 2003년 지정 해제되었다.
송포 백송의 높이는 11.5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는 2.39m,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14.8m, 남북으로 14m이다. 지상에서 1.4m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개로 갈라졌으며, 여기서 60㎝쯤 올라가서 다시 두 개로 갈라졌다. 이 두 개의 가지는 다시 세 개씩으로 갈라져서 둥근 나무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전체의 모양은 옆에서 볼 때 부챗살처럼 퍼졌기 때문에 역삼각형으로 보인다. 수세(樹勢)는 비교적 왕성한 편이다.
송포 백송은 다른 백송에 비해 그리 흰 편은 아니지만, 그 기품만큼은 차고 넘친다. 전문가들은 백송의 생장이 워낙 느리기 때문에 앞으로의 100~200년 뒤에는 송포 백송도 더 흰빛을 띌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자라면서 큰 전란이나 병충해를 겪진 않았지만, 지난 2012년 대형 태풍 ‘볼라벤’으로 인해 가지가 부러지기도 했다. 고양시와 문화재청, 경기도청이 나서 긴급히 정밀조사를 진행하고, 이후 줄기에 남은 가지를 제거한 후 부패되지 않도록 소독과 도포 처리를 한 끝에 현재는 잘 생장하고 있다.
고양시는 시의 발전과 시민들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송포 백송을 시의 상징물로 내세우고 있다. 나무가 위치한 덕이동은 농촌 속에 아파트단지가 함께 있는 도ㆍ농 복합지역인 만큼 송포 백송은 주민들의 화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덕이동과 인접한 송산동 주민들은 2004년 추수를 끝낸 농민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덕이동 아파트 주민들과의 화합을 위해 ‘백송문화축제’를 열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고양시 마을단위 축제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덕이동 느티나무
송포 백송에서 남동쪽 약 40m 지점에는 수령 550년을 자랑하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있다. 일명 ‘덕이동 느티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는 높이가 20m, 둘레가 5.5m에 이른다. 송포 백송을 처음 찾는 이들 중에는 마을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이 나무의 위용 때문에 찾고자 했던 천연기념물 나무로 착각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덕이동 느티나무는 일산서구에서 가장 나이를 많이 먹은 나무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수령이 몇 백 년 이상인 느티나무는 대부분 당산목으로 마을사람들의 숭배 대상이 되어왔다. 느티나무는 원래 줄기는 굳세고, 가지는 넓고 고르게 퍼지고, 잎은 크고 단정해서 사람들에게 여러 혜택을 안겨주었고, 특히 오래 사는 나무라 많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한편으로 오래된 느티나무는 동구나무 또는 정자나무로서 마을사람들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쉼터이기도 했다. 정자나무는 우선 가지가 동서남북으로 고루 뻗어 큰 그늘 아래에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좋다. 또 잎이 깨끗하면서도 우거지고, 수관이 빽빽해야 한다. 그래서 줄기는 위엄과 품위를 지니고, 수형이 단정해서 원만한 기품을 보이는 느티나무는 정자나무로서 완벽한 품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은 봄에 한꺼번에 싹이 나는지, 나면 어느 쪽으로 나는지 등을 통해 그해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점쳤다. 느티나무 잎이 한꺼번에 피게 되면 풍년이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며, 나뭇잎이 위에서부터 피면 풍년이고 아래에서부터 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 어떤 지방에서는 느티나무에 치성을 올리면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덕이동 느티나무는 한가운데 작은 구멍이 파여 있어 이 구멍에 작은 돌들이 올라가서 메꾸어져 있으면 마을이 평안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전해져 사람들은 오고가며 작은 돌들을 주워 구멍에 던져 넣는다.
이렇듯 느티나무는 우리 가까이에서 늘 보아왔던, 우리 삶의 모든 것들과 연관 지어진 정감 있는 나무다. 또한 느티나무의 든든하고 억센 줄기는 강한 의지를, 고르게 퍼져 있는 가지들은 조화로운 질서를, 단정한 나뭇잎은 예의를 느낄 수 있어 예로부터 ‘충’과 ‘효’와 ‘예’의 나무라 불리기도 했다. 덕이동 느티나무가 특히 사랑스러운 것은 바로 제 앞에 들어선 어린이집을 넉넉하게 감싸 안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아이들의 놀이터로, 때론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의 쉼터로 자리한 일은 아마도 느티나무 스스로에게도 가장 흐뭇한 일이리라.
호수공원 회화나무
고양시의 대표명소가 된 일산호수공원에는 수령 250여 년에 이르는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있어 일대를 ‘회화나무광장’이라 부른다. 1990년대 초반 일산신도시가 개발되기 이전부터 보호수로 지정되어 원 위치를 지키고 있으면서 일산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나무다. 호수공원 제1주차장과 제2주차장 사이에 있는 회화나무광장은 1995년 호수공원을 조성하면서 옛 마을을 기억할 수 있는 회화나무를 남겨두고 만들어진 2,300㎥ 넓이의 공원 속 공원이다.
공원으로 개발되기 전 옛 주엽리 상주와 하주 마을사람들은 전 국회의원 이택석 씨 집 앞에 있던 이 회화나무에서 마을 도당제를 지내왔다. 처음 공원을 조성할 때 주민들이 도당제를 계속 지낼 수 있도록 광장까지 마련했던 것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열리지 못하다가 22년이 지난 2017년에야 다시 도당제를 올릴 수 있었다. 당시 도당제를 주관한 정혜사의 지정자 만신은 “이곳이 개발되기 전 저의 어머니께서 회화나무 도당제를 지내오셨는데, 마을이 개발되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제를 지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우셨는지 몇 번이나 꿈에 나타나 제를 지내야 된다는 계시를 받았다”며 눈물짓기도 했다.
개발 당시 높이 13m, 둘레 4m였던 회화나무는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20m 높이로 자라면서 도심 공원에서 옛날 마을을 추억하며 신도시 주민들의 여유로운 휴식처를 제공해왔다. 현재 호수공원에는 여러 곳에 회화나무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자연학습장 건너편 아랫말산에도 200년이 넘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2018년 새롭게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회화나무는 느티나무 다음가는 정자나무로, 공원수·가로수로도 심는다. 회화나무는 그 골격을 만들 때 어떤 정형이 없이 자유분방하게 뻗어나간다. 그래서 어느 누구는 동서남북으로 고루 가지가 뻗어나가는 느티나무가 ‘법을 지키는 나무’라면, 회화나무는 ‘법을 만들어가는 나무’라고 칭하기도 한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쯤인 8월 초에 황백색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어 꽃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핀다. 특히 빨리 자라면서도 수형이 아름답고 깨끗한 품격을 지니고 있으며, 다듬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는 나무라서 조경수로도 제격이다.
향교골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가운데 느티나무와 더불어 가장 오래 사는 수종이다. 오래 살아온 ‘화석의 나무’라는 생물학적 신비성이 우리의 관심을 더욱 고조시킨다. 살아있는 화석식물로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켜온 은행나무는 사람들이 살아가지 않는 곳에서는 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또 이상하게도 수억 년 동안을 1종1속으로서, 다른 나무들은 진화하여 친척이 많으나 이 나무는 일가친척이 전혀 없다.
은행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열매가 은빛 나는 살구 씨와 닮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는 아주 옛날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나무 목재는 결이 곱고 아름다워서 조각재나 가구재로 좋고, 잎에는 플라보놀이라는 물질이 많이 들어있어 고혈압, 심장병 약의 재료로 쓰인다. 특히 우리나라 기후풍토에서 적응된 은행나무가 세계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 약리적 물질이 월등히 많이 들어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양시는 지난 6월 수령 600여 년의 은행나무가 있는 덕양구 고양동 보호수 주변에 대해 공원화 사업을 한다고 밝혔다.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는 보호수는 높이 24m, 둘레 6.7m의 은행나무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도 은행이 열리는 튼튼한 나무로, 고양향교 인근에 위치해 일명 '향교골 은행나무'로 불린다. 조선조 초기에 처음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후 고양군청이 고양동에 자리하면서 군수, 관리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고 전한다.
지난해 6월 고양동 지역 주민들은 보호수 주변의 옹벽을 없애 시야를 확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시에 공원화 사업을 건의했다. 이에 시는 나무병원에 컨설팅을 의뢰, 현재 보호수 높이에 맞게 공원 조성이 가능하다는 진단 결과를 얻었다. 이후 주민들과 관리부서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거쳐 사업을 설계했고, 지난달 말 착공이 이루어졌다. 공원은 고양동 258-14번지 일원 약 800㎡로 조성되고, 1억 5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다음 달 말 완공 예정이다.
은행나무공원에는 느티나무와 소나무 등을 심어 사계절 푸름을 느낄 수 있는 휴게공간으로 조성된다. 또 소규모 공연이 가능하도록 무대를 만들고, 진입로를 추가로 확보해 접근성을 개선할 계획이다. 공원 조성으로 보호수에 대한 보존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쾌적하고 안전한 쉼터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공원 주변으로는 도심 속 관광테마골목이 조성된다. 고양동 일대는 올해 경기도 '구석구석 관광테마골목' 사업에 선정되어 콘텐츠 개발이 진행 중이다. 600여 년의 은행나무 보호수를 품은 공원은 사적 제144호 벽제관지, 110년 역사의 고양초등학교 등과 함께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관광지로 거듭나게 될 전망이다.
고양시는 아울러 수령 100년 이상 되는 노목, 거목, 희귀목 중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는 나무 등 31곳 34그루를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다음 달 중순까지 보호수 정비 사업을 통해 수령 650년 산황동 느티나무에는 살균과 살충, 안내간판 정비 등이 이루어진다. 장항동 회화나무 등 7개 보호수에는 외과 수술과 지지대 설치 등을 하고, 용두동 회화나무 주변에는 철쭉류 100본을 심는다. 이재준 고양시장은 "고양시는 문화유산으로 소중한 가치가 있는 보호수를 보존하고, 나무와 사람의 공존이 가능한 도시 구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윤도현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중에서
고양의 나무들을 돌아보면서 내내 입가를 맴돌던 노랫말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우리네 삶도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잎 지고 나서야 녹음 무성한 지금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
■ 참고문헌
_정동일 외 <길, 고양 문화유산 이야기>(고양시, 2020)
_정헌관 <우리 생활 속의 나무>(어문각, 2008)
_임경빈 <솟아라 나무야>(다른세상,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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