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투데이】 호수공원에서 노을을 보다

유성문 주간 승인 2021.07.27 22:48 | 최종 수정 2021.10.13 10:53 의견 0

해가 질 무렵,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귀가 전, 호수공원에 들러 하루 종일 흘린 땀이라도 잠시 식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일산문화공원을 거쳐 가는데, 한 소녀가 열심히 롤러보드를 타고 있습니다. 소녀는 저녁이 오는 텅 빈 광장을 끝에서 끝으로 가로질러 누비고 다녔습니다. 안경에, 마스크에 땀깨나 빼련만 퀵에, 턴에, 점프까지 소녀는 좀체 지칠 줄 모르고 보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동안 소녀의 동작을 지켜보면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한때 일산을 상징하는 조형물이었던 아홉 개의 바람개비는 공사장 가림막에 갇혀 있습니다. 이곳에서 호수공원까지 ‘한류…’ 무슨 조성사업으로 한창 공사 중인 모양입니다. 처음 이 조형물이 세워졌을 때, 바람개비의 회전속도가 너무 빨라 손을 본다는 것이 지금은 어지간한 바람에도 꿈쩍하지 않는답니다. 완전히 멈춰버린 듯한 바람개비 때문에 하늘마저 더욱 무덥게만 느껴졌습니다. 흔히 ‘9층탑’으로 불리는 이 조형물의 진짜 작품 제목은 ‘무제’입니다.

호수공원에 도착해보니 치솟아 오르는 분수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붉은 노을 때문인지 분수의 물줄기는 무위의 몸짓처럼 힘겨워 보였습니다.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에서 9년 만에 재회한 제시(에단 호크 분)와 셀린느(줄리 델피 분)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날 당신이 내 모든 것을 가져가버린 것 같아.”

하지만 다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우린 반드시 지금을 기억하게 될 거야.”

우리도 언젠가 오늘의 노을을 다시 기억하게 될까요.

그래도 건너편 하늘의 구름은 부드럽게 ‘마지막 빛’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었음에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하고 싶은 게 어쩔 수 없는 연인의 마음입니다.

산책을 하고,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나온 사람들 모두 잠시 멈춘 채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듭니다. 세상은 여전히 잠깐의 휴식에도 얽혀들어 있는 것일까요. <고양투데이>의 기사라도 읽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으련만.

외발자전거가 호숫가를 맴돕니다. 이 익숙한 라이더는 교묘히 균형을 잡아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저래 지쳐가는 세상에서 잠시의 휴식으로나마 새로운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호숫가에 다정히 앉은 한 쌍의 친구는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요. 커피를 마시지 않을 때면 연신 마스크를 올려 쓰는 그들에게서 세상 사는 심사가 엿보여 잠시 숙연해집니다. 빨리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일상에서 오늘을 기억하며 다시 노을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7월 26일, 참 무더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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