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 늪의 수면에 비친 그늘

_창녕 우포늪

유성문 주간 승인 2021.07.29 17:50 의견 1

우포늪 ⓒ유성문(2007)

삶은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또 많이는 구석진 곳을 떠도는 애틋한 기웃거림이 아닌가. -이하석 <늪을 헤매는 거대한 수레> 중에서

이하석의 <늪을 헤매는 거대한 수레>는 ‘시와 함께하는 생태환경기행’을 부제로 달고 있다. 생태환경이라는 자못 무거울 법한 주제를 굳이 시와 함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저자의 이력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도 있겠다. 저자는 한 지방신문의 논설위원이자 시인이다. 그는 한 잡지의 연재를 위해 3년여 동안 전국 각 지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참 많은 풍경들을 힘겹게 통과했고, 많은 이들을 만나 그 속에 얽혀 사는 삶의 고단함과 광휘를 훔쳐보았다. 그러면서 느낀 여러 생각들을 늘상 마음에 둘 수밖에 없는 시편들을 통해 드러낸다.

풍경과 시를 연관 짓고 이어서 매듭지어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그 말들의 예지와 성찰 앞에서 나의 말은 참으로 멀리 겉돌고 있구나라는 뼈저린 부끄럼도 느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생태환경을 주제로 한 기행이지만, 결국 시를 만지작거리는 나를 성찰하는 기회이기도 하면서 우리 삶의 어두운 전망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거대한 수레로 시인은 산다

저자의 발걸음은 늪과 숲, 산과 바다, 만과 사구, 강과 저수지 등 이 땅 구석구석의 생태들로 향한다. 그러면서 심각한 지경에 이른 생태환경의 문제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니까 저자의 기행은 우리 국토의 훼손 양상을 따라가면서 그것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 뻔히 보이는 우리 자연 풍경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더 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그 걱정이 환경 훼손을 막는 힘으로 보태지고, 자연스러운 삶을 위한 바른 생각의 울타리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 간의 균형감각 상실로 인한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성이 사라져야 한다는 점을 더욱 강하게 느끼기도 하면서.

시인은 고독하다. 늪을 헤매는 거대한 수레로 시인은 산다. -르네 샤르 ‘시인’ 부분

우포늪의 아침 ⓒ유성문(2006)

행자의 바퀴는 우포늪으로 향하면서 르네 샤르의 시를 생각한다. ‘늪을 헤매는 거대한 수레’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늪은 얼마만한 깊이의 세계인가. 시인에게 있어서 세계는 늪과도 같은 것인가. 그래, 나는 맑은 날 우포늪에서 수면 아래 구르는 해를 보았고, 보름밤에는 둥근 달이 구르는 것도 보았다. 그것은 거대한 수레의 바퀴처럼 이글거리면서 또는 해말간 은쟁반처럼 천천히 굴러갔다. 한여름이면 늪의 많은 부분이 가시연꽃으로 덮이는데 그 큰 잎은 무수한 살이 박힌 바퀴처럼 당당하다.

말의 시인 르네 샤르의 ‘늪을 헤매는 거대한 수레’가 이와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일지라도 나는 그의 말을 되새기며 이곳에 오고 싶었다. 그 늪은 얼마나 깊고 그윽할까. 한밤중에 우포에 가보면 나도 거기에 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지만 순전히 늪이 그리워서 시도 때도 안 가리고 가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고도 싶어진다. 흡사 사랑하는 이의 집을 방문하는 젊은 연인처럼. 혼자서. 끊임없이 가슴을 설레이면서. 그래서 나는 우포에 간다는 말보다는 우포에 가서 안긴다고 말한다.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친다

경남 창녕의 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원시상태를 간직한 자연늪이다. 나이는 어림잡아 1억만 년. 빙하기를 거치면서 침식곡을 이룬 낙동강이 홍수 때 작은 샛강인 토평천을 역류하기를 반복하면서 장구한 세월 동안 퇴적물을 쌓아 물을 가두었다. 가까운 옛날만 해도 홍수만 지면 낙동강 물이 역류하여 우포늪의 수심을 한껏 높이고, 툭하면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친다’고 했을까. 우포늪이 마주보고 있는 산의 이름이 ‘화왕산(火旺山)’인데, 산의 이름을 불기운이 왕성하다는 뜻의 화왕으로 지은 이유도 이렇듯 유난스런 물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곳에 터 잡아 사는 이들에게는 수심덩어리였을 우포늪이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인 까닭은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해온 이 땅 최고(最古)의 자연사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수생식물의 교과서’니 ‘종다양성의 보고’니 ‘생태계의 자궁’이니 우포늪을 수식하는 숱한 말들이 그 가치를 잘 일러준다. 하지만 우포늪이 일반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1997년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정해지고 1998년 람사지역(국제협약에 의한 습지보전지역)으로 등록되면서 갑자기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2008년에는 람사 총회가 이곳에서 개최되면서 국제적으로 성가를 높이기도 했다.

우포늪의 봄 ⓒ유성문(2006)

우포늪의 여름 ⓒ유성문(2006)

우포늪의 가을 ⓒ유성문(2006)

그러나 세상의 관심이 자연에 꼭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지역민들과의 갈등은 차치하고라도 세인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늪은 알게 모르게 훼손되어 생태환경 파괴가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늪의 주위를 빙 둘러가며 도로를 내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길은 늪의 가장자리를 깎아먹고, 생물들이 이어지던 산과 늪의 통로들을 끊어버렸다. 거기에 차량들이 들락거리면서 이곳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삶을 긴장으로 내몰기도 했다. 게다가 외래종들이 유입되면서 토종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들었다. 뒤늦게 보전조치가 이어지고 ‘푸른 우포 사람들’같은 자발적 환경 지킴이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그나마 늪의 생명력을 지켜나가고는 있지만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형편이다.

경계와 불편의 시선을 보내는 늪의 눈

우포늪의 아침은 태고처럼 열린다. 푸른 미명을 헤치면서 ‘불의 산’이 어슴푸레 자태를 드러내면 늪은 수면 위에 그 그림자를 담아낸다. 그때쯤이면 간밤을 기다렸던 뭍의 어부들이 장대로 널빤지 배를 저어 그물을 거두러 나간다. 그 배들이 철수하고 나면 이번에는 아침 설거지를 끝낸 아낙들이 늪으로 들어가 ‘고뎅이(우렁이)’들을 거두어들인다. 그런 삶의 몸짓들이 끝나고 늪은 이윽고 한낮 생명의 적막한 몸짓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밤의 고요가 잦아든다. 늪의 사계는 또 어떤가. 늪의 봄은 물풀들의 세상이고 녹색 융단으로 덮인다. 여름날의 늪은 물풀들이 피워 올리는 꽃과 여름 철새들의 차지다. 가을은 잠자리의 천국이고 갈대들은 서서히 가을을 보낼 채비를 한다. 11월 말부터 겨울 철새들이 찾아든다. 늪은 얼어붙고 철새들의 비상 속에 겨울은 깊어간다.

흰뺨검둥오리가 퍼들껑 물을 박차고 비상할 때/ 날개 소리는 내 몸 속에서 먼저 들리네/ 검은 부리의 새떼로 늪은 지금 부화 중,/ 열 마리 스무 마리 흰뺨검둥오리가 날아오르면/ 날개의 눈부신 흰색만으로 늪은 홀가분해져서/ 장자를 읽지 않아도 새들은 십만 리쯤 치솟는다네/ 흰뺨검둥오리가 떠메고 가는 것이 이 늪을 포함해서/ 반쯤은 내 영혼이리라/ 지금 늪은 산산조각나기 위해 팽팽한 거울,/ 수면은 그 모든 것에 일일이 구겨지다 반듯해지네/ 뒤돌아서서 논우렁이 잡던 사람 둘레로/ 다시 시작하는 동심원은/ 아닌보살처럼 가볍다네 -송재학 ‘흰뺨검둥오리’ 부분

우포늪 산책로 ⓒ유성문(2006)

우포늪이 다양한 생물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의 재생력과 ‘부화’의 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늪의 수면에 비치는 바깥 풍경은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다. 행자는 늪의 수면에 자신의 영혼을 비춰보고, 그 영혼의 상처를 치유 받고 싶어 하지만 늪의 그늘은 생각보다 깊다. 불안은 가시지 않고 늪 안에 마음을 불편하게 긁적이는 그 무엇이 있다. 고요 속에서 거대한 덩어리로 내 마음을 채우고 흔들던 세계는 인간이 낸 길로 토막 나있고, 토막 난 늪 자락들은 서서히 말라죽어 간다. 산과 들로 이어지던 무수한 생명의 길을 잘라버린 우뚝한 길, 나는 바로 그 길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늪은 헤매는 거대한 수레는 그대로 늪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인가, 아니면 안간힘을 다해 늪을 헤쳐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경계와 불편의 시선을 보내는 늪의 눈을 의식한다. 나는 반성하면서 돌아선다. 그러면서 나는 흡사 사랑하는 이에게 아쉬움을 표시하는 것처럼 늪 저편에 서 있는 해오라기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물총새가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빠른 걸음으로 습지 위를 내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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