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투데이】 추석이 낼모레

유성문 주간 승인 2021.09.18 10:39 | 최종 수정 2021.10.13 10:47 의견 0

흥보의 마음이 이랬을까/ 추석이 낼모레/ 박 다섯 덩이는 따서 내 지게에 지고/ 서너 발 됨직 하게 캐 담은 고구마는/ 어머니 흰 머리에 이고 집에 왔는데/ 박을 타던 내 옆에서 지켜보던 큰놈이/ 우리는 왜 장에 안 가냐 하고/ 둘째놈도 덩달아 졸라댄다/ 검소하고 조용하게 보내는 것이 명절이란다/ 남들과 똑같은 게 좋을 것 없지/ 일손을 놓고 달래보는데/ 오늘따라 하늘이 더욱 푸르고/ 추석이 낼모레/ 아내가 쓸어놓은 정한 마당에/ 감나무 이파리만 떨어진다/ 이 박을 타거들랑 우리 꽃님이 운동화 한 켤레와/ 간조기 몇 마리/ 또 이 박을 타거들랑 어머니 양말 한 켤레와/ 우리 아루 때때옷 한 벌만 나와줄랑가/ 나는 어느덧 노래를 불렀는데/ 아니다, 아니다/ 매운 연기 속에서 고구마를 찌시는 정정한 내 어머니와/ 조르다 조르다 저들끼리 놀고 있는 내 딸들/ 이런 순간만이라도 오래 오래 있게 하여달라고/ 다시 노래를 불렀는데… -박형진 <추석이 낼모레> 전문

몇 해 전 추석날, 덕이동 들판을 거닐다 논두렁에 놓인 상차림을 보았다. 지신(地神)에게라도 바치려는 것이었을까. 한눈에 보아도 그 마음과 정성이 느껴졌다. 세상이 어려우니 그 어떤 마음 하나, 정성 하나까지도 새삼 절실해진다. 그래, 넉넉해서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따뜻해서 풍요로운 것이다. 비록 모두들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만은 따뜻함으로 가득한 추석이기를 빈다. 중추가절(仲秋佳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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