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물고기】12- 해방자 붓다, 반항자 붓다

_붓다가 이 땅에 오신 까닭은

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2.05.07 10:02 | 최종 수정 2022.05.07 10:13 의견 0

막내상좌가 농사일을 도와주고 갔다.

“요즘 어때?”

“빗속의 참새처럼 외롭네요.”

이제 힘든 일은 다 끝났는데 ‘빗속의 참새’라는 표현이 참 신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생사(生死)가 생사가 아닐 때, 고민에 휩싸인 날들이었다.

우거지상을 하고 앉았는데 옆에 노스님이 다가와 앉으셨다.

“야야, 니는 붓다가 이 땅에 온 까닭이 뭐라고 생각하노?”

“부처님 오신 날을 석가탄신일 휴일로 지정해 주시려고요.”

노스님이 머뭇거리다 입을 연 나의 대답에 기가 막히다는 미소를 지으셨다.

그림 : 정운자/시인ㆍ수채화가

도량을 청소하고 불기를 닦고

연등을 내다 걸고

봄밭을 일구어 씨를 뿌렸다.

“니 반항자 붓다나?”

“……”

속으로는 ‘중생을 외면하는 불교는 불교가 아니죠’라고 대답했다.

“다 꿈속의 일이다. 니놈이도 마 자지 힘 빠지믄 마 알게 될끼다.”

“……”

“그래서 슬프나?”

“슬픈 정도가 아니라 몹시 고단하고 괴로워요.”

“맞다. 슬프고 괴로운 게 중생이고, 중생인 니가 바로 부처인 기라. 니가 바로 평화를 가져다주고 구원을 가져다주는 수행자란 말이다. 산신각의 흰수염할배가, 법당의 노랑할배가 부처가 아니라 마 인즉시불(人卽是佛), 사람이 부처인기라.”

“…치이…”

속으로는 ‘개코나’ 했다.

“니는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존재인기라. 니는 존귀하다고. 지금은 너에게 부처가 고통스럽고 고단하겠지만 난중에 가서는 너에게 위로가 되고 아마 힘이 될 끼다. 그래, 부처님이 사는 게 수행이라 안 했나. 불타는 집, 불덩이라꼬. 번뇌에 빠진 너를 구원하는 것도 너고 해방시켜 주는 것도 바로 너다.”

“……”

“산다는 건 고통의 의미를 깨닫는 일이야. 바로 그 고통을 깨닫는 게 바로 깨달음인 기라. 삶이 고통에서 고통으로 끝나는 건 범부의 생이고, 너의 외로움 고독과 삶의 고통에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복락(福樂)이 되는 삶, 그 생이 수행인기라. 마, 이기 세속인과 수행자의 차이인 기라.”

“……”

그때 속으로 그랬다. 대자유인(大自由人), 이타는 차치하고라도 죄나 덜 짓고 그저 산중에 조용히 살 수 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꼬.

“자족(自足)은 곧 지족(知足)이라. 니놈이가 니놈에게 독립하는 길이다. 그게 자주야. 자유이고 해방이라꼬. 대자유인이 되어야지?”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고, 복락이라꼬예?”

“그렇지, 즐거운 고통. 구복(求福)이 아니다. 소원(所願)도 아니다.”

“…그럼요?”

“번뇌를 아는 것도 너의 마음이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도 너의 마음이다. 또한 깨달음을 구하는 것도 너의 마음이다. 불성, 자성, 열반, 해탈을 향한 해방자(解放者)가 되어야지.”

그림 : 정운자/시인ㆍ수채화가

오는 것은 갈 것이다.

찾은 것은 다시 잃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있는 것은

오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렇게 나도 빗속의 참새처럼 유년(幼年)을 떠올리는데. ‘인간, 자연, 생명, 평화. 인즉시불’ 하며 홀로 남아 법당 가운데 앉아 ‘노시님요, 안직도 저는 모르겠는데요’ 하고 중얼 중얼거리는데, 다람쥐 한 마리 쪼르르 달려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멈칫해서 귀를 쫑긋거린다. 산다는 게 참 신비롭고 경이롭다.

그때 보리가 어슬렁 다가오자 다람쥐는 꽁지 빠지게 달아나고, 보리가 그 다람쥐의 뒤를 불이 나게 쫓아가고 있었다. 쫓고 쫓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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