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가족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5.09 12:54 | 최종 수정 2022.06.13 15:25 의견 0

부처님오신날이고 어버이날이고 일요일이다. 뭔 ‘날’들을 이렇게 묶어 놨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우리 집으로는 할아버지·할머니 제사이기도 하다. 원래 할머니 제사인데 돌아가신 지 60년도 더 지난 할아버지 제사를 할머니 제삿날로 옮겼다. 이렇게 두 분 이상의 제사를 합치는 걸 합사(合祀)라고 한다. 자손들 편하자는 뜻이 없는 건 아니지만, 두 분이 손잡고 함께 오셔서 따순밥 드시고 가라는 의미가 더 크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물불 안 가리는 방랑벽으로 할머니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그러더니 내가 태어나던 해, 환갑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전설의 고향> 정석대로 그 많던 재산은 빚으로 둔갑한 뒤였다. 그래도 두 분, 저승에서 다시 만나 잘 살고 계시겠지.

절에서 머슴살이할 때는 제사에 참석할 수 없었다. 부처님오신날은 도저히 몸을 뺄 수 없을 만큼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벽 일찍 일어나 몸을 씻고 혼자 절을 올리고는 했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니 꼬박꼬박 제사 지내러 다닌다. 이외수 선생 돌아가시고 잠시 회복될 기미를 보였던 몸 상태는 일주일쯤 지난 뒤부터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충격으로 아픔을 잠시 잊은 거라는 누군가의 말이 맞았던 모양이다.


다시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정선에 가서 일해야 하는 처지로는 최악의 상황이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도 못 만나고 있다.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아픈 몸이 아니라, 오래 앓다 보니 찾아오는 우울감이다. 매사 자신이 없다. 대체 이 꼴이 뭐람. 아침에 큰 아이가 전화했다.

“아버지! 이따 모시러 갈게요. 그냥 작업실에 계세요.”

“모시러 오긴 거기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와. 괜찮다. 버스 타고 갈란다.”

어버이날 할머니를 찾아뵙고 증조할머니·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가는 김에 나를 태워가겠다는 것이다. 유난히 도시 운전을 싫어하는 나는 서울에 갈 때는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파주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 두 번 갈아타는 과정은 꽤 멀고 복잡하다. ‘여정’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을 혼자 지내는 나는 버스와 지하철 여행이 즐겁다. 단절됐던 세상과 유일하게 만나는 순간이다. 큰아이는 몸이 안 좋은 아버지가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 게 영 불안했던 모양이다. 분당 서현에서 파주까지 오는 길은 만만치 않다.

“괜찮아요. 그냥, 계세요. 어차피 처가에 갔다가 가야 하니까 그리 멀지 않아요.”

“그래? 그렇다면 뭐 그러든지.”

심드렁한 척 대답했지만 한편으로는 반갑다. 사실 통증에 시달리는 몸으로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가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묵직하게 얹힌다. 자식이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고, 그게 무슨 감동씩이나 할 일이냐고 하겠지만 성격 까다로운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식의 신세를 진 적이 없다. 가족 아닌 누구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해주면 해줬지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누가 날 위해 무언가 해주는 게 영 어색하다. 아이들이 그런 내 성격을 모를 리 없다. 내 뜻을 어기는 셈이다. 그런 판이니 이 상황 자체가 새삼스럽다. 이젠 내가 질 차례구나. 나는 네게 지고 너는 언젠가 네 자식에게 지고...

큰아이는 결혼하고 제 아이를 낳더니 정말 어른이 되었다. 아비는 늙거나 병들어가고,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느덧 그 수레바퀴 속에 있음을 실감한다. 그 바퀴에서 스스로 뛰어내릴 수는 없는 일이니 그저 가만히 나를 맡기고 가는 데까지 가봐야지 어쩌겠나.

마감 가까운 시 한 편 얼른 써두고, 일찌감치 옷 갈아입고 앉아있다. 이왕 가는 거 얼른 가야지. 90 넘은 노모 새벽부터 기다리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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