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두 딸과 어머니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5.23 09:00 | 최종 수정 2022.06.13 15:26 의견 0

“엄마, 벌써 나갔대~!!!”

느닷없이 날아온 새된 목소리가 역사(驛舍) 안의 공기를 팽팽하게 당깁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합니다. 40대 중반쯤 되었을까? 여자 하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달려갑니다. 맞은편에서 한 여자가 역시 당혹스런 얼굴로 달려옵니다. 언뜻 봐도 둘은 닮았습니다. 자매가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반가워할 새도 없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언니는 거기 앉아서 대체 뭐한 거야? 기차가 벌써 도착했다는데 엄마가 나오는 것도 못 보고”

“내가 왜 안 봐. 여기 앉아서 뚫어지게 쳐다봤다구. 아직 안 나왔단 말야.”

“아, 글쎄 나왔다니까. 어떡해. 어디 가서 찾느냐구.”


금방 머리채라도 잡을 듯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시골에서 딸들을 보러오는 어머니를 마중 나온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기차에서 내린 뒤 다른 사람들 꽁무니를 따라 마냥 걸어 나온 모양이지요. 그런 어머니를 먼저 도착한 언니가 발견하지 못한 거고요. 사람이 살다 보면 그렇게 결정적일 때 어긋나는 경우가 제법 많지요. 그나저나 저렇게 탓만 하고 있으면 안 될 텐데. 서울 지리에 캄캄한 노인이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제 가슴이 타들어갑니다. 여보세요. 자매들이여. 지금 싸울 때가 아니에요. 얼른 찾아봐야지요. 그리고 그렇게 화난 상태로 만나면 그 화기가 어머니에게 가게 돼요.


자매가 제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서로 나뉘어 부지런히 엄마를 찾기 시작합니다. 역사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를 빌 수밖에 없습니다. 분주하게 한참 오가더니 저만치서 감격의 해후가 이뤄집니다. 작은 딸이 상가 근처에서 두리번거리는 어머니를 찾아낸 것입니다.

“대체 어디 갔었어? 왜 가만히 안 있고 돌아다니는 거야?”

이번에는 큰 목소리가 어머니에게 향합니다. 노인은 마치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숙입니다. 언젠가 저 딸이 어렸을 적, 반대의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겠지요. 그래도 생각보다 쉽사리 만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오지랖 넓은 저는 또 입 밖에 내지도 못하는 한마디를 합니다.

“여보게, 놀란 노인 너무 몰아세우지 말게. 당신은 또 얼마나 당황했겠나.”

걱정과 사랑이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눈은 세 모녀에게서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저들의 밥상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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