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어느 후배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8.12 09:00 | 최종 수정 2022.08.12 12:10 의견 0

불길한 전화는 벨소리부터 불길하기 마련이다. 민감한 사람에게는 진동도 마찬가지다. 어제 아침의 그 전화가 그랬다. 후배 J였다.

"형님, 어디세요?"

"어디긴? 작업실이지."

이 대답부터 뭔가 잘못된 것이었다. 5년 전에 예약된 남극 여행 중이라고 했어야는데.

"오늘 저녁에 어디 안 가시지요?"

이 순간이 비극에서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난 거짓말을 하면 꼬리가 나오고 이마에 뿔이 돋는 특이병을 앓고 있지 않은가.

"응! 작업실에 있을 거야."

"그럼, 저녁에 봬요."

뭐? 뭐라고? 저녁에? 왜? 왜 이 더운 날 내가 너를 봐야 하는데? 하지만 난 J에 약하다. 늘 나를 멘토라고 부르짖는 젊은 후배에게 차마 마지막 문장은 뱉지 못하는 지병을 앓고 있다.

저녁 8시.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 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자정의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악마가 나오는 호러 영화의 규칙적 발소리보다 더 불길했다. 대체 이 친구는, 이 더운 날, 왜 찾아와서 내 가슴을 알감자 조리듯 졸이게 한단 말인가.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여름 손님은 호랭이보다 더 무서운 벱이여. 커서라두 여름에 누구네 집 갈 생각 말어."이 얼마나 큰 교훈이란 말인가. 나 하나의 더위도 주체하기 어려운데, 대체 누구의 더위를 떠맡는단 말인가. 손님이 올 때는 사람만 오는 게 아니잖는가. 하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왕 손님이 왔으니 올들어 처음으로 에어컨도 켰다. 이눔의 에어컨은 왜 들여놔 가지고. 에먼 집주인을 원망했다.

문이 열리자 사람이 아니라, 산더미부터 들어왔다. 짐이 머리 위까지 올라가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 친구가 이렇다. 뭘 그리 바리바리 싸왔는지. 혼자 사는 사람보고 대체 어쩌라구.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 큰 고기 세 팩, 과수원 일곱 개쯤 털어온 듯한 온갖 과일, 저 먹을 소주 다섯 병에 맥주 큰 걸로 한 팩, 버섯, 황태 채, 저 자루는 뭐지? 아! 잘못 따라온 게 아닐까? 끝내 눈을 비비고 말았다. 괴산 찰옥수수. 그것도 옥수수밭 하나쯤 통으로 담은 것 같은 큰 자루. 이 친구가 미쳐도 단디 미쳤구나. 그걸 다 내려놓고서야 사람이 보인다. 그놈 맞네? 심드렁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이 친구가 오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 지가 불을 피우고, 고기를 내서 굽고, 지가 냉장고를 열고 닫고, 지가 신김치를 꺼내고… 나는 불현듯 손님이라도 된 듯 구경을 하다 술잔만 준비해서 앉으면 된다. 고기가 익고 술질이 시작됐다. 세상은 더워도 술은 술술 들어갔다. J가 느닷없이 윤 모 이야기를 꺼냈다.

"형님! 일주일에 120시간 노동하는 거 가능해요."

"뭔 뜬금없는 소리여?"

"제가 그렇게 살았거든요. 10년 동안 1주일에 7일씩 일했어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가락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다가 하루 종일 팔고 밤 열 시나 돼야 장사를 접고 집으로 갔지요. 설, 추석만 빼고 1년 내내 그렇게 일했어요."

그랬구나. 그렇게 살았구나. 고생하는 줄은 알았지만 네 삶이 그렇게까지 치열한 줄은 몰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채소 장사를 했다. 말 그대로 ‘총각네 야채가게’의 원조였다.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알토란 같은 삶을 일궜고 한 가정을 꾸렸고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웠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무에타이의 고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 그렇게 10년 넘게 사니까 어느 날 번아웃(burnout syndrome)이 오더라고요. 무기력증과 회의에 빠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해요. 인생 자체에 빨간불이 들어온 거지요. 고혈압도 당뇨도 그때 시작됐습니다. 다행히 운동으로 다 극복했어요. 지금은 말짱해요."

"……"

"몸이 좀 좋아질 무렵 결심했어요.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을 살아보자. 그래서 찾은 게 건강할 때 좋은 사람들을 찾아다니자는 거였어요. 그 사람들이 싫다고 해도 꾸역꾸역 찾아가자. 볼 수 있을 때 봐야지, 기회를 놓치고 울면 뭐하나. 그게 제 삶의 숨통이고 일탈인 거지요. 그러기 위해서 일요일 하루는 쉬기로 했어요."

"……"

"그래서 형님을 찾아온 겁니다. 밖에도 안 나오고 글만 쓰는 형님을 불편하게 해드릴 걸 알면서도… 형님에겐 민폐지만, 제겐 버킷리스트거든요. 아시잖아요. 이십 몇 년 전 형님을 만났을 때부터 형님은 제 멘토였거든요."

고백이 깊어질 무렵부터 이 친구의 혀가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졸음에 겨운 술병이 하나둘 자빠졌다. 하나, 둘, 셋… 세다가 그만뒀다. 대체 몇 명을 마신 거야.

"J야! 이제 그만 마시고 자라."

"어? 제가 설거지 해야는데요?"

"됐어. 빈말인 줄 아니까 내 침대에 가서 자."

J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는 듯이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몸을 던지더니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오늘도, 아니 벌써 어제인가?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장사를 하고 먼 길을 달려왔을 것이다. 나 하나 보겠다고 졸음을 털어냈을 것이다. 나는 조용조용 책상을 밀어놓고 실내자전거를 밖으로 빼놓았다. 그렇게 토굴 파듯 마련한 빈자리에 겨울이불을 꺼내 요 삼아 깔아놓고 나와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드런 눔! 싸 오기도 많이 싸 오고 먹기도 많이 먹었네. 먹기만 할 것이지 눈물은 왜 여기다 빼놓고 들어갔누.'

설거지를 마칠 무렵 창밖을 보니 달만 징그럽게 밝았다. 어쩌자구….


새벽에 살금살금 나와 찹쌀 좀 섞어서 밥을 안친 뒤, 자른 황태를 들기름에 볶고 무를 나박 썰어 해장국을 끓였다. 준비된 찬거리가 없어서 달걀말이를 하고 아끼던 양파장아찌도 내놓았지만 상은 쓸쓸했다. 상 크기를 줄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까지도 J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 작업실을 연 이래 최초로 자고 가는 친구, 내 침대를 최초로 빼앗은 친구, 단 하나뿐인 베개를 베고 잔 친구, 나를 무지막지하게 부려먹은 친구를 깨워서 수저를 들려줬다.

"밥 먹자."

"와!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아침밥인지 모르겠네요."

"왜? 아침 안 먹어?"

"예, 새벽에 일어나면 냉수 한 잔 마시고 일하러 가서, 처음 몸에 곡기를 들이는 게 오후 한 시쯤이에요."

"에이, 나쁜 놈. 그럼 아침 안 먹는다고 미리 말을 하지. 괜히 밥하느라고 고생했네."

J는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웠다. "형님이 차려준 밥을 먹는 게 바로 역사"라고 외치면서 사진까지 찍어가며 먹었다.

밥을 먹여 그를 보냈다. 그늘 깊은 나무에서 하룻밤 쉬었다 가는 고단한 새의 뒷모습으로 마흔아홉 살의 한 사내가 떠났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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