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창포길 통신】 낮 천국, 밤 지옥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승인 2022.09.09 09:00 의견 0

작업실을 옮긴 건 코로나의 후유증이 극에 달한 날이었다. 도와주겠다고 와서 짐을 풀던 큰아이가 뜬금없이 물었다. “아부지는 산이 좋아요? 바다가 좋아요?”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같은 옛말과는 상관없이, 제 동생과 휴가 이야기를 하던 끝에 물은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쓴웃음이나 깨물고 말았지만, 질문의 여운은 내 안에 오래 남아 있었다. 나는 어디를 좋아하는 걸까? 결론은 산도 바다도 강도 상관없고, ‘사람 없는 곳이면 좋겠다’였다.

모 TV 프로그램 ‘자연인’ 류의 삶을 꿈꾸는 단계는 오래전에 지났고, 사람 없는 어느 산기슭에서 남은 생을 무두질하고 싶다는 생각은 40대 초반부터 품어왔다. 하지만 난 여전히 대처 인근을 떠돌며 사람들 틈에 몸 부비며 산다. 팔자 탓일 수도 있고 저지름에 인색한, 용기없는 탓일 수도 있다. 보령의 궁벽진 바닷가에서 몇 달 숨어 살기도 하고 1년 가까이 내설악에 들어가 산 적도 있지만, 그곳 역시 ‘사람 곁’이었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딱딱하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말았다.

이 동네(구 주소로는 파주시 문발동)로 작업실을 얻으러 왔던 날은 많이 지쳐 있었다. 파주의 곳곳을 헤매고 다닌 까닭이었다. 헤이리에서 맥금동(이쪽은 완전 시골이다)까지, 그리고 요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야당동까지, 종횡무진 뒤졌다. 집이 마음에 들면 돈이 부족하고, 돈에 맞추려니 쪽방 수준의 환경이었다. 그러다 이 동네에 왔을 때는 꽤 만족할 수 있었다. 우선 동산(언덕에 가깝다)이 지척이었고, 동네가 어찌나 조용한지 마치 ‘절간’에 들어선 것 같았다. 집이 이렇게 많은데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니. 내가 살던 약천사보다 더 고요했다. 마침 끌어모을 수 있는 돈과 주거 환경도 기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즉시 계약을 한 뒤, 입주 전에 두어 번 더 와 봤지만 첫인상을 바꿀 만한 요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꿈꾸는 산속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 환경이면 글 쓰며 사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동네를 찾을 수 있었던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리고 이사하던 날, 도와주러 왔던 후배와 아이들이 돌아간 뒤 아픈 몸을 얼른 침대에 던졌다. 짐이고 뭐고 눈이라도 잠깐 붙여야 할 것 같았다. 고작 여섯 시였다. 그대로 잠들었으면 좋았으련만, 그 순간 반전이 시작됐다. 갑자기 세상에 없던 굉음이 창문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소리였다. 한두 대 지나가고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의 오토바이가 모두 나와서 퍼레이드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내다봤더니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이었다. 그제야 이 동네의 특성과 소음이 연결됐다. 이곳은 원룸이나 투룸이 주종을 이루는 곳이다. 즉 나처럼 혼자 세 사는 사람들이 낮에는 뿔뿔이 흩어졌다가 저녁에 모여드는 곳이다. 그러니 내가 찾아왔던 낮에는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집에 와서 음식 하기 귀찮으니 주문을 하는 것 같았다. 한꺼번에 배달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이유였다. 보통 소음이 아니었다. 일단 창문을 꼭꼭 닫았다. 소리는 줄었지만 답답했다. 이사를 잘못 왔나? 지금이라도 다시 이사를 가야 하나? 이룰 수 없는 공상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홉 시만 넘으면 괜찮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거의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저녁식사를 마칠 시간, 아홉 시가 넘으면서 거짓말처럼 오토바이 소리가 사라졌다. 누가 시끄러웠던 벽시계의 뻐꾸기 목이라도 조른 듯 감쪽같았다. 아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고요의 세상이야!! 라고 기대치를 한껏 높이는 순간, 또 다른 소음 하나가 창을 열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알코올 기운이 진하게 묻은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이 동네에는 유난히 편의점이 많다. 언뜻 헤아려도 일곱, 여덟 개는 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특징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집 앞에도 편의점이 하나 있고, 밖에는 테이블들이 놓여있다. 그 테이블이 바로 소음의 근원이었다. 어디선가 1차를 마친 술꾼들이 거기 앉아서 ‘입가심’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면 마주 앉은 사람이 높이기 마련. 한 테이블이 떠들면 옆 테이블도 떠들기 마련. 종국에는 뮌헨 옥토버페스트(맥주축제) 현장에라도 있는 것처럼 시끄러워지는 것이다. 뭐 이딴 동네가 다 있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중늙은이로서는 치명적인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오자마자 이사 갈 수도 없고, 초원의 양이라도 헤아리면서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세상이 내게 적응하지 못하면, 내가 열심히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사는 방법이다. 이야기는 길게 늘어놨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다, “나 자신을 믿지 말자.” 내가 가진 것들은 완벽하지 않다. 아니, 허당이다. 내 눈과 내 귀와 내 코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잠깐 보고 들은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들은 호시탐탐 날 속일 준비를 하고 있다. 매 순간 의심하고 돌아보고 다짐받아야 한다. 이런 동네가 정말 조용한 동네라고? 믿어도 돼?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내 시행착오, 스스로가 아니면 누굴 탓하겠는가?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면 좀 이상하지. 진짜 반전은 지금부터야.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그렇게 울다 웃다 며칠 지나니 이 동네가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야. 장점만 보이더라구. 어느 정도냐 하면, 분명 굉음을 내뱉으며 달리는 오토바이들은 여전한데 그 소리가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거야. 느끼지 못하는 일상소음으로 편입된 거지. 게다가 술꾼들 떠드는 소리도 친구가 부르는 것 같이 친근해지더란 말이지. 엊저녁에는 유혹에 못 이겨 달려 나갈 뻔 했다니까. 역시 변덕 많은 나를 믿어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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