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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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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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을 사랑한다. 金씨 성을 가진 한 여인을 사랑한다는 건 아니고 먹는 김 이야기다. 상에 올릴만한 찬이 없을 때, 그래도 어떻게라도 밥을 넘겨야 할 때, 봉지 김 하나는 얼마나 큰 위안인지. 한마디로 나 같은 독거청년이 생존을 이어가는데 크나큰 은총이라는 뜻이다. 코로나로 빈사 상태에서 허우적거릴 때, 아무 음식도 만들 수 없었을 때, 내 입에 밥을 떠넣어 준 것 역시 김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집에 김을 떨어트리지 않는다. 나름의 ‘생존 킷’인 셈이다. 아침부터 김 이야기를 늘어놓는 데는 배경이 있다.
추석 차례를 지내러 갔다가 돌아온 오후였다. 길이 유난히 막혔고, 모처럼 시도한 장거리(?) 운전의 후유증으로 옷도 제대로 못 갈아입고 널브러져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부랴부랴 나가 보니 주인집 할머니가 문 앞에 서 계셨다. 이사 온 지 열흘이 넘었는데 고작 두 번째 뵙는 것이었다. 집주인 두 부부가 앞집에 사시는데, 어찌나 조용조용 오가는지 바깥어른에게는 아직 인사도 못 드렸다. 마주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부동산계약서에 의하면 바깥노인은 80이 넘었고 안노인은 80이 거의 다 됐다. 어찌나 민주적이고 재산분할이 잘 돼 있는지 계약서에 땅은 남편 이름으로, 건물은 부인 이름으로 돼 있다. 즉 두 사람과 계약을 했다는 뜻이다. 문패도 두 분의 이름을 나란히 써 걸었다. 부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멀지않은 곳의 농장(본인들은 밭이라고 표현한다)에서 보내고, 농번기에는 잠도 그곳의 농막에서 잔다.
“어? 안녕하세요?”
“집에 계셨네요? 명절인데 그냥 지나가기가 뭐해서.”
노인은 말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종이상자 하나를 내게 건넸다. 언뜻 봐도 김 상자였다. 세 사는 집마다 추석 선물을 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제가 드려야 할 선물을 어떻게….”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자꾸 더듬거렸다.
“아이구, 그런 게 어딨어요. 제가 인사를 차려야지요.”
노인은 당황해서 손을 쌀래쌀래 젓는 내게 얼른 김 상자를 떠안기고는 그대로 등을 보였다. 그 등에 사양 따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적혀 있었다.
나는 문을 닫을 생각도 못 하고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절반은 아내와 절반은 가난과 결혼한 뒤 온갖 풍랑을 헤쳐오면서 셋방살이도 많이 했다. 늙어가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혼자 세상을 떠돌면서 또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명절이라고 주인집에서 선물을 챙긴 건 단연코 처음이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살벌한 세상에 이런 관계 설정도 가능한 거야?’
내게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얼마나 냉정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지 않는가. 집주인과 세입자가 어울려 살기보다는 대립의 관계 속에 살아온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그런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추석 선물을 들고 온다고? 그것도 80 노인이?
뭔가 논리적이지 않고 뭔가 현실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뭔가 억울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집에서 내게 잘 보여야 할 일은 없었다. 그깟 김 한 상자 얼마나 한다고 그리 감동하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묻는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다. 나는 여전히 작고도 사소한 것에 진짜 마음이 들어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그 사소한 일에 눈물을 흘리는 여린 사내이기 때문이다. 문을 닫고 들어와 가만히 앉아 오랫동안 감동을 싸안고 있었다.
‘역시 이사를 잘 온 것 같지? 오늘 저녁은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김을 두 봉지 먹어도 되겠어.’
따뜻해진 목소리로 혼자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한가위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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