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굴뚝새가 우는 저녁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5.30 21:00 의견 0

굴뚝새가 우는 저녁

이서화

나무 발발이과에 속한 굴뚝새

12층 난간에서 한참을 울다 날아간다

꼭, 근처 어딘가에 굴뚝이 있을 것 같다

아랫목이 흐릿해질 때쯤

아궁이 가득 군불을 받아내던

저녁나절의 굴뚝이 있을 것만 같다

열몇 살 때부터 지금까지

오래 잊고 또 깜빡 잊고 있던 새

그사이 굴뚝들은 멸종되어가고 있다

굴뚝이 사라지자 나무들은 안심했겠지만

으슬으슬한 몸의 곳곳에는

군불과 아랫목이 싸늘해졌다

그러니까, 나무들

아파트 내 공원까지 내려왔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소여물을 맹렬하게 끓이던 굴뚝

빈 솥에 맹물만 끓이던 군불

열 식구 저녁밥을 끓여내고

가난한 집이면 가끔 쉬기도 했던 굴뚝

그 굴뚝이 사라지자

도끼와 부지깽이가 사라지고

아랫목과 윗목이 사라지고

검게 그을린 방구들이 사라지고

굴뚝 청소부가 사라졌다

사라진 목록을 가지고 있는 굴뚝새

어둑한 저녁 하늘로 사라지던 연기처럼

옛집의 굴뚝 근처로 또 날아간다

# 이서화 시인| 영월출생. 2008년《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시집 『굴절을 읽다』 『낮달이 허락도 없이』 『날씨 하나를 샀다』 20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 시가 현실과 환상이라면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 있다.

시를 읽는 재미는 시 너머에 있는 시를 읽는 것이다.

시인이 읽는 시와 시인이 아닌 이가 읽는 시는 다르다.

그래서 이서화 시인의 시는 재밌다.

나무 발발이과에 속한 굴뚝새

12층 난간에서 한참을 울다 날아간다

꼭, 근처 어딘가에 굴뚝이 있을 것 같다

아랫목이 흐릿해질 때쯤

아궁이 가득 군불을 받아내던

저녁나절의 굴뚝이 있을 것만 같다


12층 아파트에 굴뚝이 있다? 시인은 굴뚝이라는 신화적 공간과 현실을 병치시킨다. 이제 우리들에게 굴뚝이라는 건 신화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 굴뚝은 사라졌지만 굴뚝새는 날아다닌다.

그래서 이서화 시인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도시출신 아이들은 아궁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성냥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도 있다.

자본의 세상에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12층은 물론 34층에서도 뜨듯한 물이 콸콸 나오고 방이 따스해지고 전화 한 통이면 세계 각국의 산해진미, 그 어떤 음식도 배달 되는 세상이니까.

열몇 살 때부터 지금까지

오래 잊고 또 깜빡 잊고 있던 새

그사이 굴뚝들은 멸종되어가고 있다

굴뚝이 사라지자 나무들은 안심했겠지만

으슬으슬한 몸의 곳곳에는

군불과 아랫목이 싸늘해졌다

굴뚝이 사라지고 현대화 도시화 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놓친 것은? 어린 시절, 내가 본 가장 큰 굴뚝은 읍내 나가면 공중목욕탕에 서있는 굴뚝이었다.

<열몇 살 때부터 지금까지/ 오래 잊고 있던 새>

개인사(個人史)를 통해 시대사(時代史)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소여물을 맹렬하게 끓이던 굴뚝

빈 솥에 맹물만 끓이던 군불

열 식구 저녁밥을 끓여내고

가난한 집이면 가끔 쉬기도 했던 굴뚝

그 굴뚝이 사라지자

도끼와 부지깽이가 사라지고

아랫목과 윗목이 사라지고

검게 그을린 방구들이 사라지고

굴뚝 청소부가 사라졌다

시인은 굴뚝새, 굴뚝, 소여물, 부지깽이, 아랫목 윗목의 방구들, 굴뚝청소부를 등장시켜 회상에 빠지게 하고 낯설게 한다.

아버지가 그랬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아침 먹고 소꼴 베어 놓고 학교 가라고. 으으, 꼴망태도 싫었고 지게 작대기도 싫었다. 그랬다. 준비물은 사주지 않았고, 크레용이 없어 학교도 가기 싫어 징징거리기만 했던 등교길. 그 길었던 부지깽이는 점점 짧아져 갔고, 결국엔 아궁이 속으로 던져졌고

<어둑한 저녁 하늘로 사라지던 연기처럼>유년, 청년, 그 열정적인 시절들은 지나갔다. 발발이처럼 살았던 그 많던 저녁들 사이로.

사라진 목록을 가지고 있는 굴뚝새

어둑한 저녁 하늘로 사라지던 연기처럼

옛집의 굴뚝 근처로 또 날아간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없다. 곡진(曲盡)하기만 했던 우리들 삶 속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시의 너머에 있는 고향, 본향을 떠나 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고 있단 말인가. 보릿고개, 너 나 없이 가난했던 그때 그 출렁거리던 시절을 이제 보내고 어느 대도시의 12층 베란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view를 바라보며

<아랫목과 윗목>이 사라졌다는 시인. 시의 분위기와 상황설정이 뛰어나다.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그 시적감각과 <옛집의 굴뚝>으로 날아가는 굴뚝새로 현실에 대한 인식태도를 친근하게 우리들에게 굴뚝청소부가 <뚫어!>하듯 <어라, 굴뚝새가 나네!!>하는 시의 날개를 우리들에게 조곤조곤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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