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日夜 萬死萬生)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6.13 09:00 의견 0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日夜 萬死萬生)

하루 낮 하루 밤에 만 번 죽고 만 번 산다.

고추, 첫줄 매주는 날이다.

줄을 매기 전에 방아다리를 따내어 나물 만들어 먹는 날이다. 대개 이 작업은 모내기가 끝나고 여름이 접어든다? 하안거에 들 때, 망종 때 쯤의 일이다.

불가에서는 사바를 심전(心田)이라 한다. 마음의 본바탕? 심지(心地),마음자리라 하기도 하는데 마음이 지혜와 복덕이 자라나는 밭과 같다는 뜻에서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자연인과 수행자가 다른 점이 바로 이 점인 것이다.

자연인은 그저 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수행자, 수도자는 다르다. 수행자는 불도,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다.

이 땅에 수행자 아닌 이가 누가 있던가. 마음밭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가꾸고 추수하는 농사랑 다를 바 하나도 없다. 그리하여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자작자수(自作自受)라 한다.

비가 올듯 흐린 날이다.

밭에 일하다 허리를 펴고 앉으니 꽃들이 바람에 춤을 추며 서 있다.

산에서 산다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남들 눈을 의식하고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쪽팔리게 누를 끼치고 살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상황에 못 미쳐 하지 못하는 건 못한다 하더라도 능력이 닿는대도 게을러 일을 그르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스님 참 대단해. 소리는 못 들어도 <으이그 저 중놈새끼덜>, 그따위 소리는 듣고 살고 싶지 않아 나름 열심히 살았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고 <나만 아니면 되지 뭐>, 해도 가슴 아픈 일이다.


산중에서는 혼자 감내해야 할 것도 많고 혼자 해내야 할 일들도 많다. 이제까지 무탈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음, 고추가 많이 컸네.> 앉을뱅이 동그란 의자를 가지고 고추밭에 앉았다. 올해 고추는 그리 많이 심지 않았다. 고추 모종 한 판이 128구다. 다섯 판을 심었으니.

방아다리를 따며 회한에 잠겼다. 농사도 그렇지만 공부도 다 때가 있다. 지금 시기는 고추, 곁가지, 곁잎을 따줄 때다. 이걸 방아다리를 딴다, 고 한다. 적심(摘心)이라는 것이다.

적심(摘心)이란 생육중인 작물의 줄기 또는 가지의 선단 생장점을 잘라주어 분지수를 늘이거나 생육을 촉진하는 방법이다. 쉽게 이야기 해 순자르기를 하는 것이다.

가지가 많다고 꽃이 많다고 열매가 많이 튼실히 맺히는 건 아니다.

적심(摘心)은 순지르기라고도 한다. 줄기를 잘라 해당 줄기의 생장점을 제거해 다른 가지를 건강하게 유도하는 것. 혹은 결실기에 접어든 식물의 생장을 인위적으로 중단시켜 열매를 크게 맺게 해주는 것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솎아내기해주는 것이다. 대개는 방아다리를 따주고 첫 줄을 매 주고는 진딧물이 출몰하는 시기이므로 첫 방제작업을 해준다.

마음도 그렇다. 마음을 잘 지키고 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휘둘리지 않는다. 걸러내지 않은 마음에서 거친 말, 탐욕, 노여움이 거개는 惡業을 불러 일으킨다.

어느 절이었던가, 달마봉에 적심대(摘心台)라는 바위가 있던 암자에 머문 적이 있었다. 老師는 높이 손을 올려 뻗으면 달을 딸 수 있는 곳이라 했다. 그런데 老師의 조건이 마음을 비워야 하늘의 달도 별도 딸 수 있다던 거였다.

부처님은 마음밭을 갈고 김 매는 농사로 온갖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을 수행자라 했다. 심전, 심지. 마음밭을 갈아 씨부리는 일, 때때로 삶의 고통은 현실이되곤 한다. 고추밭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승가도 그렇게 적심(摘心)이 필요한 시기이다.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슬픔(悲)이며,지혜는 내 멍에다.

호미, 부끄러움은 괭이자루이며, 의지는 잡아주는 줄.

생각은 호미날과 작대기이다.>

학명스님의 선원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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