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우리는 우주,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6.27 09:00 의견 0

차마고도 외전(外傳)

조현석

그렇구나, 걸을수록 멀어지고

오를수록 오늘의 끝으로 다가가는

깎아지른 빌딩의 그림자 꼿꼿한 도시

자신을 되비치는 유리창 벽들 빛나고

또 빛나는 길이 시작하고 끝나는

인도 앞과 뒤와 옆, 또 그 앞과 뒤와 옆

그 어디고 천 길 낭떠러지로 이어지니

무작정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한다

뒤를 돌아보는 후회 따위는 남기지 말고

아하, 추락은 가능해도

상승이나 횡단과 추월은 허용되지 않는

어떤 것도 그림자 남기지 못하는

금빛 햇살이 소리 없이 녹아내리는

바람마저 툭툭 끊겨 가쁜 숨소리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도시 한복판

백척간두, 아찔한 빌딩 꼭대기

발가락 닳고 짓물러 뭉개지기 전에

도착한 어느 곳

그저 삼보일배 고행을 강요하는데

걸음은 결코 더디어지지 않는다

벼랑이다 걸을수록 기어갈수록

멀어진 세상과 가까워지는

허공에 발 딛듯 안전하게 걸어야 한다

# 조현석 시인

1963년 서울 출생.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로 등단했다.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 『불법, …체류자』, 『울다, 염소』, 『검은 눈 자작나무』 등을 출간했다. 도서출판 북인 대표이다.

# 우리는 우주,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시인은 우리가 가는 길, 사는 길을 백척간두라 한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딛으면 추락하는 천길낭떠러지의 인생길, 삶의 길을 차마고도라 한다.

차마고도 茶馬古道는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길이다. 해발 4,000m가 넘는 험준한 길과 눈 덮인 5,000m 이상의 설산과 아찔한 협곡을 잇는 이 길을 통해 차와 말 외에도 소금, 약재, 곡식 등의 다양한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졌으며, 물품교역 외에도 여러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와 지식이 교류되었다.


그렇구나, 걸을수록 멀어지고

오를수록 오늘의 끝으로 다가가는

깎아지른 빌딩의 그림자 꼿꼿한 도시

자신을 되비치는 유리창 벽들 빛나고

또 빛나는 길이 시작하고 끝나는

인도 앞과 뒤와 옆, 또 그 앞과 뒤와 옆

그 어디고 천 길 낭떠러지로 이어지니

우리는 왜, 깍아지른 그 길을 왜 가는가?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샹그릴라는 어디에 있는가? 가면 갈수록 점점 낙원과는 멀어지는. 시인은 존재, 실존이 처음으로 일어나거나 시작되는 시점, 그 기점(起點), 생겨서 일어나는 발화(發火)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디에 있는가, 묻는다. 사랑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살기 위해?

아하, 추락은 가능해도

상승이나 횡단과 추월은 허용되지 않는

어떤 것도 그림자 남기지 못하는

금빛 햇살이 소리 없이 녹아내리는

바람마저 툭툭 끊겨 가쁜 숨소리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도시 한복판

차마고도는, 대한민국이라는 도시 한복판. 욕망의 쿤룬산맥(崑崙山脈)보다 더 험한 낭떠러지의 도시 한복판. 도대체 우리들의 낙원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미래는, 희망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예전에 바라던 상황인가?

백척간두, 아찔한 빌딩 꼭대기

발가락 닳고 짓물러 뭉개지기 전에

도착한 어느 곳

그저 삼보일배 고행을 강요하는데

걸음은 결코 더디어지지 않는다

벼랑이다 걸을수록 기어갈수록

멀어진 세상과 가까워지는

허공에 발 딛듯 안전하게 걸어야 한다

뭔가 달라질 거라는 환상을 품어보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살면서 안타까움이랄까, 가치의 혼란을 겪는데 대한 마뜩찮음이랄까. 그래도 살아야 하는 우리들.

가도가도 대립되는 험한 길,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지옥 같은 길, 끝이 없이 상치되는 삶. 그 인생길. 시인은 그래도 <허공에 발 딛듯> 끝끝내 살아내야 하는 열반의 길이라 한다.

차마고도로 삶, 生이라는 주제의 무거움을 어찌 이리도 이끌어내 독자에게 설득해 낼 수 있을까. 샹그릴라, 그립고 아쉽고 가슴 조이는 쓸쓸함, 씁쓸하지만 결국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시인의 시적감각과 완성된 삶을 향해 가자 가자, 하며 개진해보자는 시인. 그렇듯 시를 읽으며 잔잔하게 밀려드는 이 감동은 뭐지? 허공에 발을 딛는 듯한, 하늘로 얼굴 추켜들게 하는 아주 이상스런 감동은 뭘까? 그렇게 차분한 문체와 주제의 진지성을 포착해 낼 수 있는 건 아마 우리의 도착점이 바로 피안이라는 시인의 희망의 시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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