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토마토는 채소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8.08 09:00 의견 0

토마토가 왜 내 뚱글러진 젖탱이 따가냐고, 고추가 왜 내 빨갛고 실한 놈만 따느냐며 쳐다본다. 나의 텃밭농사는 삶을 달콤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예초기 고쳤다. 나도 오래 썼고 예초기도 오래 썼다. 예초기는 내가 고친 게 아니라 상좌가 와서 고쳐주었다.

그랬다. 나의 텃밭농사는 깨어있기 위함이었다.

덥다. 낮에는 움직이지 못한다. 새벽이나 저녁답이면 슬슬 땀 흘리러 간다. 아마 내가 텃밭농사를 짓지 않았으면 나는 진즉에 고인이 되어 있을 거다. 그러니 농사는 내게 삶을 지탱하는 운동이기도 한 셈이다.

새벽에는 애호박, 오이, 토마토를 딴다. 저녁답에는 고추밭으로 간다. 고추밭의 고추를 따며, 한 생각을 한다. 토마토를 왜 채소라 하지? 참 뜬금없다.

야채류라는 건, 식사의 일부로 먹는 초본식물로 주식으로 식용하기에 야채라 한단다. 그럼 과일은 뭐지? 찾아보니 달콤한 과육을 가진 식물이란다. 종자식물로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는 생식기관이라 한다. 생식기관? 이거 뭐야? 식물학자들 왜이래? 하며 피식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로는 복숭아, 사과, 배 등등이 있다.

채소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열무, 시금치, 배추같이 잎과 줄기를 먹는 놈들이 있고 무, 당근, 고구마모양 뿌리를 먹는 것들이 있고 오이, 토마토, 수박같이 열매를 먹는 걸 열매채소, 과채류라 했다.

오이, 토마토, 수박은 식물학적으로 꽃에서 수분되어 씨앗을 품고 열매를 맺기에 생물학적으로는 과일이라 한다. 그러나 법학적으로는 후식으로 먹지 않고 다른 음식의 재료로 쓰여 주식으로 사용하기에 채소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내가 농사를 했던 건 나의 고독 때문이 아니었다. 자급자족하고 싶었다. 산속이나 세간이나 교육은 참 문제였다. 상좌 두 놈이 대학을 다닌 적이 있었다. 불사를 할 때였는데 막막했다.

그때, 마을에 노는 밭이 있는데, 날더러 천 여평의 밭을 경작해보라는 제의가 들어왔었다. 하여 고추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 내가 그걸 감당했는지 끔찍하기만 했다. 이건 중이 아니라 순 농사꾼이었다. 다행이 농협에서 차가 와 수매해 갔기 때문에 풋고추 홍고추 꽈리고추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해내야 했다. 반드시 해내야 했기에 힘든 지 몰랐다. 상좌들도 그걸 알기에 토, 일요일이되면 서울서 내려와 나를 도와주곤 했다. 젊었기에 가능했다.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기도 하고. 농부스님. 중노릇 떴떳하기도 했다.


스님 힘들죠?

벗고 있다. 나를 벗어나려고 노력중이다.

그러면 상좌들이 씩 웃었다.

사랑하는 마음의 따뜻함과 경이로움이었어요.

스님의 헌신과 사랑에 감사드려요.

잊지 말고 너도 나중에 니 상좌에게 그래준다면 난 상관하지 않는다.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생, 우리들은 불편했지만 행복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저 가요.

가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대요.

지랄. 너 쓰다 남은 거 있으면 좀 두고 가라. 전립선엔 뭐가 좋대냐? 하자

놈이 내 말에 킥킥대고 웃는다. 앵벌이 시킨 거처럼 '아싸' 하며 봉투 하나 받아 들고 뛰며 좋아하고.

이젠 두근거리지도 설레지도 않고 콩닥거리지 않는다. 마당에 풀 좀 있으면 어떠랴, 법당 좀 지저분하면 어떠랴. 원고 수정한 거 타이핑 좀 치라니 바쁘다고 놈이 그냥 일어선다. 그래도 옛날처럼 왁왁거리지도 않는다. 의사는 허리 협착증이라고 했다. 아이고 허리야, 해도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그렇구나,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生

토마토는 채소였구나, 할 뿐

토마토 베끼기

​ 박완호

토마토의 불안을 본다, 는 문장을 쓰고 있을 때 그가 문을 열고 들어 왔다 마침표를 찍기 전이었다 마침표를 찍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순간 이었는지도 모른다 토마토는,

치명적으로 붉은 생각을 품은, 손바닥으로 살짝 감싸기에 알맞은 크기의, 한번 손에 쥐고 나면 놓치고 싶지 않은, 말랑말랑하고도 질긴 근육질의, 처음인지 마지막인지 자꾸 되묻는 연애처럼 비릿해지는

식물성의 혈통으로 붉게 술렁이는 생즙, 마시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벼락 맞은 나무처럼 창백해지는 유리잔, 피톨처럼 묻은 알갱이들, 엄마,라고 하면 상투적인 것 같아 다른 발음으로 부르고 싶어지는

한 사람을 본다 사랑, 이라고 쓰면 그게 누구야 하는 질문들 비좁은 틈 바구니를 가까스로 빠져나온, 토마토와 나의

낯빛이 짙붉게 포개지는 순간,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 나는 문득 낯부끄러운 꿈을 꾸다 들켜버린 토마토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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