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가을, 오늘도 밤바다를 걷는 스님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9.19 09:00 의견 0

오늘도 앉았다. 목숨의 바다에 앉았다. 칡꽃향기 사방에 진동하고 밤이 길어졌다.

젊은 날엔 잠이 많았다. 노을바다에 앉기만 하면 졸았다. 화두는 잡히지 않고 속으로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선방에 앉아 속으로 부르다 그만 큰 소리로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줘/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하고 소리내어 노래를 부르다 경책을 당하기도 했다.

울고 싶었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들릴 듯 들리지 않았다. 뚫릴 것 같던 화두는 뚫리지 않았다. 그래서 벙거지 모자를 쓰고 콧수염을 기르던 이외수 선배와 친했던 이남이 가수의 <울고싶어라>를 속으로 부르기도 했다. 통곡의 바다에 <떠나보면 알 거야 아마 알 거야/ 떠나보면 알 거야 아마 알 거야/ 왜 가야만 하니 왜 가야만 하니 왜 가니/ 수많은 시절 아름다운 시절 잊었니>하자, 여기저기서 킥킥대며 <스니임, 으이그 못 말려>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래도 선방도반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앉았다가 자칫 잘못하면 앞으로 폭 고꾸라지고, 옆으로 픽 쓰러지기도 했다. 졸다가 자다가 뒤로 발랑 넘어지고 꽈당. ‘아고고 쪽팔려라.’

멍 때리다가 졸아 앞으로 쓰러져 코피가 나기도 했다. 찐득한 피가 얼굴을 감쌌다. 아픈 거도 아픈 거였지만 꽈당당탕 소란을 피워 옆에 수행의 바다에서 정진하던 이들에게 피해를 입혀 미안해 하기도 했다.

그랬다. 옆이나 뒤로 쓰러지면 별 탈 없었다. 뒤통수를 바닥에 부딪혀도 뇌진탕은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앞으로 폭 고꾸라졌을 때가 문제였다. 뭐야, 이게. 코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딫히면서 혀를 깨문 적도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피가 철철 흐르기도 했다.

선가에서는 졸음을 오죽했으면 수마(睡魔)라고 했을까. 못 견디게 밀려오는 졸음을 악마라고 까지 했다. 젊은 날 왜 그리 잠이 많았을까.

누구였더라, 밤을 책이라고 했던 이가. 또 누군가는 밤을 선생이라 했던가. 그랬다. 나는 밤을 좋아했다. 나의 역사들은 거개가 밤에 이루어졌다.

이제 매미울음소리 잦아들고 밤이면 풀벌레소리 요란하다.


누군가 물었다.

<산에서 무슨 재미로 살아요?>

산중이 한가한지 아는가 본데 아니다. 적적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적적함을 스산함을 달래려고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나름 밤 열시까지 바쁘다.

인생을 사는 건 산중이나 저자거리나 매한가지다. 산천경계 풍광 좋은 곳에서 설렁설렁 대충대충 살려면 속가에서도 그리할 수 있듯 산중에서도 충분히 그렇게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산에 살면 누구나 다 한 가지 소임을 맡고 있다. 나의 소임은 머슴이다. 불목하니, 물론 소임 맡으려고 중이 된 건 아니다. 그래도 밥값은 하고 살아야 한다.

어딘들 머물 곳이 없으랴. 많이 떠돌았다. 그랬다. 떠나려고 머물었던 것이 아니라 머물고자 떠나왔던 길이었다. 나, 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떠나왔던가. 이제 몸 거동이 불편하고 아무래도 어딘가 어색하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던가. 하긴 맷돌처럼 돌절구처럼 오래 앉아 있긴 했다. 해도 보고 달도 보았는데 왜 이리 허전한 것인지. 의사가 허리 협착증이란다. 다행이 중증은 아니라 하니 조심조심 산다. 하긴 맥없이 그놈의 바다에 너무 오래 앉아 있기는 했다.

나이가 들자, 점차 행동이 느려진다. 잠은 줄고. 그래도 나는 내가 살고싶은 대로 살았으니 여한이 없다. 나는 떠날만큼 떠나도 보았고 머물만큼 머물어도 보았다. 하여 금생에 몸도 마음도 실컷 이 바다를 누리고 살았다. 이제 자리잡고 돌아보면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 아니었다. 적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화엄의 바다를 누리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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