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이 슬픔을 팔아서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10.17 09:32 의견 0

이 슬픔을 팔아서

이정우

이 슬픔을 팔아서

조그만 꽃밭 하날 살까

이 슬픔을 팔면

작은 꽃밭 하날 살 수 있을까

이 슬픔 대신에

꽃밭이나 하나 갖게 되면

키 작은 채송화는 가장자리에

그 뒤쪽엔 해맑은 수국을 심어야지

샛노랗고 하얀 채송화

파아랗고 자줏빛 도는 수국

그 꽃들은 마음이 아파서

바람소리 어느 먼 하늘을 닮았지

나는 이 슬픔을 팔아서

자그만 꽃밭 하날 살꺼야

저 혼자 꽃밭이나 바라보면서

가만히 노래하며 살꺼야

# 시를 쓰신 시인 이정우(알베르토) 신부님을 만난 건 호랭이 담배먹던 시절, 영덕 덕흥사에서 였다. 기억하기로 신부님은 병술년 개띠로 기억하는데 사형과는 고교 동창이라 했다.

오늘은 그해 가을처럼 햇살이 따가웠다.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갑자기 왜 그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그해 가을 나는 쭐레쭐레 둘이를 따라가 포항의 노을지는 바다를 보며 저녁만찬을 얻어 먹었다. 그랬다. 간절하고 절실하면 꾸준해졌다. 나도 서른 나이쯤엔 그랬다.

<스님은 그래 슬픔을 팔아 뭘 장만하고 싶어?>

달빛이 내리자 파도소리를 밟던 신부님이 내게 물었다.

<그냥, 걍 이렇게 평화롭게만 살고 싶어요.>

별빛에 붉게 물든 나의 대답에 둘이는 피식 웃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나무와 풀과 그리고 하늘이 있는, 누가 오라 가라 하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살고 싶어요, 라고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때 가만히 노래하며 살 수 있는 자그마한 꽃밭이 내게는 간절하고 절실할 때였다. 하여 서울로 올라가면 황학동에서 중고 타자기를 하나 장만하기로 했었다. 나도 처절하게 슬픔에 안겨보려고.

그리고 바닷가에 우리가 멈춰 서서 핀 쑥부쟁이와 들국화를 보고 섰을 때, <그런데 팔아서, 아파서, 꼭 서, 를 붙여야 했어요? 걍 팔아, 아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했더니 신부님이 <그러네.>하셔서 우리는 그저 바닷가에서 갈매기들과 낄낄거렸을 뿐이었다.

<그래, 고정된 삶에 얽매이지 않고 너는 꽃밭 바라보며 살고 있냐고?> 누군가가 하늘에서 묻는 거 같다.

나는 그저 미소지을 뿐. <꽃이네!>하며 쑥부쟁이, 노오란 들국화를 한참 내려다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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