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그래도 우리가 갈 곳은 이제 한 군데 남아있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3.01 09:00 의견 0

지금 살아 있다는 건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거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내 입장에서는 사는 거다. 나는 혼자서도 잘 논다. 땅을 파고 두둑을 만든다. 나는 항상 흙에게 배우곤 한다.

내 삶은 내가 만드는 것, 나는 아주 단순하게 산다. 올해는 두 가지 농사를 추가하기로 했다. 기존으로 해왔던 텃밭농사지만 추가된 하나는 더덕이고 하나는 도라지다. 더덕 꽃과 도라지꽃을 피우는 일이다. 꽃을 피우는 일은 즐겁다.

이랑을 만들고 고랑을 만드는. 그리고 씨앗을 뿌리는 농사를 짓는 일이 작고 적은 일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내겐 큰 일이다.

<스님, 이 고생을 왜 해요?>

암자를 방문한 보살이 묻는다.

<내 마음이지.>

내 말에 쿡 웃는다. 어떻게 사느냐, 는 각자 다 다르다. 살아 남은 자들의 의무는 사는 거다.

<거기서 잔소리만 하지 말고 거기 호미 좀 줘봐 봐.>


사람답게 사는 일이 무엇인가.

<스님, 전 요즘 자주 울어요.>

<아들이 망했다고 보살이 망한 건 아니잖아.>

<......>

<제 인생은 왜 이래요, 왜 이리 슬픈 거예요? 라고 묻는 건 어리석은 거라고.>

<네?>

<그래도 여기까지 기어 올라온 걸 보니 최악은 아니네, 뭐. 할망구, 산을 내려가서 다시 살아봐. 힘이 든다 거나 나이를 먹어서 못하겠다는 마음은 버리라고. 보살, 보살의 아들은 다시 일어설 거야. 우리들은 모두 낙원으로 가고 있다고.>

그제야 보살이 눈물을 훔친다. 보살은 낙원상가 근처에서 장사를 한다.

<칠십이 다 된 노인네가 훌쩍거리니 섹시한데.>

<크으.>

그저 편하고자 한다면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나는 씨익, 웃었다.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욕심도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야. 아들에게 용기를 주라고. 다시 일어서게 해. 그게 불자야. 잘 늙어가는 일이 참 어렵지?>

<......>

<우린 아직 숟가락을 떨어뜨리지 않잖아. 손을 덜덜 떨지도 않고 빤쓰에 오줌을 싸지도 않잖아.>

말은 그렇게 해도 눈은 흐려지고 몸은 무겁고 무뎌진지는 오래다. 느려터졌다. 느리면 좀 어떠랴.

봄이 온다. 새로운 봄이다.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우리들의 생, 삶은 부피가 아니라 질이다. 처절해 하지 마라. 애잔해 하지도 마라. 언제, 우리들의 삶이 빛 났던가. 그럼에도 우리들의 삶은 빛이 나고 있으니. 그럼에도 우리가 갈 곳이 있으니 있으니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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