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입제다. 어제였다.
<자네는 禪門에 든 적이 있는가?>
산밭에서 고구마를 심고 있는데 사형 두 분이 먼 길 오셨다. 그리고 물음을 던진다.
<그저 칠흙같은 어둠 속에 부처를 찾다 저의 희로애락을 보았을 뿐입니다.>하고 대답하려다, <그저 봄바람이 스치기에 고구미를 심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이거저거 즐기고 언제 부처가 되려고?>
농사에 그렇게 시간을 많이 쏟고 언제 수행하려는 거냐는 물음이다.
<사형들 밑에 부전으로 살 때도 좋았고 그렇게 나그네 발길 닿는 곳이 정토극락세계가 아니었던가요? 지금 제게는 고구마가 부처님이십니다.>
속납 일흔 넷의 사형이 말문이 막히는지 빙그시 웃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허긴 자네는 다른 중들하고는 좀 달랐지. 그나저나 내년에도 내가 다시 올 수 있으려나?>
내 삶의 여정에 사형들은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 말에 잠시 대화가 끊겼다.
<수좌!>
<네, 스님?>
<그래도 화상은 성공했네.>
<뭐가요?>
<자네가 나를 여기까지 찾아오게 했으니.>
<크으. 나가십시다, 내년에도 분명 다시 오실 수 있으실 겝니다. 저녁공양은 제가 모실 게요.>
그때 내 법명은 진득이었다. 사형은 졸졸 쫓아다니는 나를 찐드기라 불렀다.
사형들은 갔다. 나는 사형들만큼 큰 절 주지도 못해봤는데 하늘에는 둥근 달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바래다 주어 편히 돌아올 수 있었다. 빈 절깐. 날은 어둡고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길 위의 생. 갈 곳이 없었다. 벗어날 수 없는 길, 운명의 길이었다. 길은 힘들지만 가야할 길이라 여겼다. 이제 산 층층이 다랭이밭, 옥수수만 싶으면 올 농사는 끝이다.
<이 세상이 화엄의 세계라더니 여기가 극락이고 낙원이구만.>
달빛 아래 털썩 앉았다.
내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목탁 치고 싶으면 목탁치고 예불하고 싶으면 예불하고 참선하고 싶으면 참선하고. 콩도 심고 팥도 심고 고구마도 심으리라, 헐벗고 굶주렸던 그 나날들. 그랬다. 매번 안거 때마다 부처가 되는 걸 실패해도 좋았다.
찐득아 찐득아 뭘 먹고 살았니 오뉴월 염천에 쇠부랄 밑에
디롱~ 대롱~ 달렸다가 비바람에 똑 떨어지니
가는 행인 오는 행인 찔껑 밟아 툭 터졌네
단개미는 장상고고 왕개미는 상여매고
쉬파리는 맞상제요 모기란 놈은 독 상제라 들금들금~
어허, 미륵의 나라 광영이여, 해가며 달빛아래 두 팔을 벌리고 (앞부분은 서사적으로, 중간 이후는 국악조로) 찐득이, 라는 단양지방에서 전해져 오는 전래동요를 목청 높여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달빛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하안거 입제라 해도 이제는 애써 도를 배우는 것(苦心學道)보다 이래 노는 게(快心行樂) 나의 일상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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