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6.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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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문병우
둥근 해 밑에서 고독, 했더니
해가 고독 글자를 태워버린다
홀로라는 문장도 믿지 말거라
외롭다는 문장 그립다 할지니
장독에 감꽃 몇 떨어져 보이나
보여서 어찌할거나
해, 나, 감꽃, 장독
무얼 주인으로 적을거나
좁아들어도 非문장 늘어나도 非문장
고독, 술안주는 되나요?
안주는 하되 감꽃 놀라게는 하지마라
술이 취해도 술이 깨어도
감꽃, 만지거나 던지지 마라
네 나이 지는 해
감꽃 몇 번이나 보려니
해, 나, 감꽃, 장독 주인은 누구인가
주인이 어디 있어
늙은 아가야~ 늙은 아가야~
지리산을 떠나 이곳으로 온 지 어언 삼십 년이 넘었다.
<스님, 감꽃 보러 오세요.>
<감꽃이 피었어요?>
어디선가 문병우 시인이 감꽃 보러 오라고 전화질을 해대는 거 같다.
지리산을 떠나와 머물게 된 곳은 강원도 골짜기 추운 곳이었다. 감꽃이 보고자파 감꽃나무를 심었지만 겨울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죽고 말았다. 분명 보온 덮개로 감싸주었건만. 그 이듬해 봄, 죽었던 감나무에서 다시 싹이 돋더니 감나무는 고염나무가 되어 있었다.
그 고염나무가 이제는 내 키보다 제법 컸다.
감꽃을 보러 지리산에 갔던 적이 언제던가.
감꽃은 내 몸 안에서 다시 피는데 감꽃 피었다고 곡차 한 잔 하자는 이 없으니, 하는데 김준태 시인의 감꽃이란 시가 또 떠오른다.
감꽃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지리산을 떠나온 지 삼십 년, 고분(古墳) 같은 암자 마당에 앉아 나 지금 무얼 세고 있는 거지, 그리움인가. 사무침이었던가. 어딜 그리 헤매고 돌아쳤던가. 다시 심은 감나무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올 해는 감꽃이 피려는지. 누구에게 저 감꽃을 보러 오라 할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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