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 thinking. 새로웠던 한 해가 또다시 반으로 접어들었다. 뭐했나? 피식 웃어본다. 가뭄이다. 뜨거운 햇살에 농작물이 타들어간다.
나의 아침 일과는 물 주기다. 비소식은 토요일 날 시작해서 월요일까지 온다고 되어 있다. 극심한 가뭄 뒤에는 꼭 장마가 오곤했다. 물 준다고 주었는데도 곳곳에 고추가 말라 죽은 게 보인다.
어린 날 노스님이 얼굴을 찡그리는 나를 보고 물었다.
"마음대로 안 되지? 못마땅하나? 그래 괴롭고 힘드나?"
"....예."
"수행이란 그 괴롭고 힘듦에서 벗어나는 기다."
"네?"
"사는 게 수행이라."
think & thinking 해도 그때는 그 뜻을 몰랐다.
"그렇게 힘들고 괴로워 하는 그놈은 누구고?"
"........"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생. 그렇게 그놈이랑 내 안에서 살았다.
그리고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think & thinking. 무엇을 꿈꾸었던가? 이제 나이가 들어 하루 온종일 빈둥거리며 놀아도 뭐라는 이 없다. 그래도 빈둥거리고 놀지만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대견하다. 고즈넉함이랄까, 슬픔을 아는 나는 내가 좋다. 놀기만 하면 무슨 재민가.
"마, 피할 수 없으믄 즐겨라. 인생 뭐 있나? 뭐가 중한데? 니처럼 그렇게 까칠하게 부딪혀 싸우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고 물러나 고요하고 평화롭게 사는 게 최고다. "
".....네?"
"그렇게 인생 재밌게 잘 놀다 보면 놓고 두고 비울 수 있다. 논다고 생각하면서 살아라. 그러다보면 경계에 다달아 그 즐거움까지도 버릴 수 있는기라."
"......"
그랬다. 꽃길만 걸어온 건 아니었다. 가시밭길 파도치는 벼랑길을 건너왔다. 사는 건 비가 와도 바람치는 눈보라 속에도 살아지더라. 풍요롭거나 부자가 되려 한 적은 없다. 다만 너무 없음에 얽매이고 주눅들어 하는 걸 싫어했을 뿐.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 지고 싶지 않았다. 받아먹고만 사는 불교가 아니라 베풀고 나누며 살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사느라 바빠 옳고 그르고 좋고 싫은 걸 구분할 겨를도 없었다. 또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할 이유도 까닭도 없었다.
호박 말릴 게 있어 내 방 뒤, 구석방에 있던 열다섯 채 반짜리 고추 건조기를 시험가동해보는데 전원은 들어오는데 작동이 되지 않는다. AS를 신청하니 년식이 오래되어 송풍 모터, 히터고장으로 아예 새로 구입해야 한단다. 모터와 히터가 새로 나와 구형에는 맞질 않는단다. 하긴 십년 넘게 썼다. 하여 '제기랄'하는데.
"잘 살고 있나?"
어디선가, 노스님이 물으시는 거 같다.
AS를 온 전문가가 고추밭을 한번 슬쩍 보더니 '아무래도 여덟 채 반짜리 고추 건조기 하나 새로 장만하셔야 할 거 같아요'하고 영업을 한다.
그때, 뜨거운 하늘 위 어디선가 노스님이
'얼마나 더 농사 지어 먹겠다꼬? 오래 살고 싶은 가봐?' 하시는 거 같아 혼자 미친놈처럼 낄낄대고 웃었다. 앞으로도 있는 듯 그러나 없는 듯 놀다 가기만 하면 된다. 많은 죽음을 보았다. 염할 때 보니 저승 갈 때 입는 수의에 주머니 단 망자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
think & thinking. '높은 산 험한 바위는 지혜 있는 사람이 머무는 곳이고, 땀내나는 이 중생들의 고추건조기 고장 난 골짜기, 미륵뫼는 저의 놀이터였습니다.'라고 한 대답을 준비해 본다.
그랬다. 이제 깨달아 부처가 되겠다던 마음은 버렸다. 그저 법의 밥을 먹어 중생으로 주린 창자를 달랠 줄 알게 되었으니 복 밭이나 가꿀 뿐이다. 거북을 등에 업고 하늘에 오르려 하지 않는다. 그닥 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 사는 동안 꼼지락거려 건강하게 남은 자유나 누리다 가고 싶은 마음이다.
어쨌든 여덟 채 반 짜리라도 건조기를 장만하긴 해야 할 텐데.
깊은 숨을 내쉬며 AS 온 이에게 출장비에다 만원을 얹어 고장난 건조기를 처리 해 달라고 내려보냈다. 순간, '야야, 내가 고장 나 멈추면 니가 쓰레기 치우듯 나를 치워 줄 수 있나?' 하시던 노스님. think & thinking.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린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나그넨인기라. 그러니 자유하다 가거라', 하시던 노스님 말씀이 이 새벽에 머리를 쿵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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