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김영희 시집, 『그 속 알 길 없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성적 사유, 깊이 있는 연민을 담은 시들

조용석 기자 승인 2024.07.12 11:10 | 최종 수정 2024.07.12 13:08 의견 0


"독심술이나 투시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유심히 지켜보아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
또는 낯선 풍경과 사물을 마주쳤을 때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 말고,
그 너머의 것을 알고 싶을 때 말이다."


2004년 『강원작가』 시 부문 신인상으로 받은 후 꾸준하게 시작 활동을 해온 강원 홍천 토박이 김영희 시인이 데뷔 20년을 기념해 네 번째 시집 『그 속 알 길 없다』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66번으로 출간하였다.

김영희의 시집 『그 속 알 길 없다』는 형식상 옴니버스처럼 여러 겹의 서사가 각기 별개인 것처럼 완결되어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기저에는 아무나 쉽게 흉내낼 수 없는 깊이의 ‘연민’이 흐르고 있다.

김영희 시인이 보여주는 연민은 깊이가 남다르다. 시 「비문(碑文)」에서 보듯 “한낮 달궈진 시멘트 농로 위에” 몸이 말라 비틀려 죽어 있는 ‘지렁이’는 사실 특별한 관찰 대상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시인이 죽은 지렁이를 ‘사체’가 아니라 ‘서체’로 인식하는 순간, 지렁이는 한갓 사물이 아니라 ‘육서’가 되어 그 시작인 “어떤 절박함”과 결말이라 할 수 있는 “죽음 뒤에 남기고 싶은 문장”을 연이어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상상은 시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 이번 시집에서 원형적이면서 동시에 개성적인 두 개의 차원을 보여준다. 범상할 수밖에 없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유를 시인의 구체적인 체험을 덧입힌 개성적인 인식으로 바꿔 형상화함으로써 독자에게 새로운 시의 지평을 살펴볼 기회를 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는 시간이 아닌 바로 ‘그때’와 이름과 위치가 아닌 ‘그곳’을 체험할 수 있다.

절기상 ‘하지’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다. 시 「하지」에서 “꽃냄새에 동네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밤꽃으로 환”한 날로 하지를 묘사하고 있다. 실제 현상이겠지만 낮이 가장 긴 날을 ‘밤꽃’으로 의식하는 건 일종의 반어적 의미를 내포한다. 또한 ‘밤꽃’이 유희와 쾌락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감자’를 수확하는 화자와 대비된다는 점에서도 일종의 부조화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하지’라는 집단적, 문화적 원형에 따른 이해일 뿐이고, 시인은 그날을 “아들이 태어나던 유월 스무하루 즈음”이라고 극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으로 기억함으로써 ‘밤꽃’과 ‘감자’의 편차를 일순간에 지워버린다. 이는 개인의 무의식 원형이 문화라는 집단 원형에 녹아들거나 비롯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반증한다.

표제시 「그 속 알 길 없다」를 순식간에 살아나게 하는 중심 시어는 ‘속’이다. “늙은 집”, “혼자 남은 집”, “텃구렁이 떠난 그 집”이 대상으로서 사물의 실제를 드러낸다면 “꿍꿍이”, “음흉한 저 속”, “작당” 등은 시인이 대상에 투사하는 정서적 감응의 성격을 암시한다. 시인은 할아버지, 할머니 즉 거주자의 내력보다 긴 세월 함께했지만, 혹시 다른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를 ‘집’의 속사정을 궁금해한다. 여기서 “알 길 없다”라는 부정문은 ‘속’이 집의 개념적 정의거나 쓸모에 따른 가치 정도가 아님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상국 시인은 “김영희 시인은 행복한 시인이다. 그가 지닌 시적 자산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모든 중생이 겪는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삼는 자비를 일러 ‘동체대비’라 한다. 비유하자면 김영희 시인은 시로써 산천과 거기에 깃든 사람들과 동체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는 홍천이라는 불이(不二)의 땅에 지나가는 계절과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서사를 무제한적으로 퍼다 쓴다. 그것은 기계적이고 도시적 감성에 편중된 요즘의 시적 정서와는 달리 그가 속해 있는 산천의 일부로서의 자연스러움이자 농경적 세계관이 주는 동체적 생명력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시인의 언어에 대한 염결성과 친연적 담담 넉넉은 시의 품격을 끌어올리고 독자에게는 편안함을 선물하고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며 시집 출간을 축하해주었다.

시인 김영희는

강원도 홍천에서 출생했다. 2004년 『강원작가』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저 징헌 눔의 냄시』, 『신남 가는 막차』, 『침침한 저녁이 더듬어 오던 시간』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 강원작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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