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山人이라 한다. 불교하는 사람들, 거개가 수행자, 스님들이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이름이다. 예를 들어 가야산인, 지리산인, 설악산인, 한라산인. 산에 사는 사람들의 평상시 살아가면서 갖는 마음을 보는 거 같아 보기 참 좋다.
세속의 향락과 쾌락, 세속적인 욕망을 멀리 하는 사람들. 은둔적이다. 청빈과 고행, 명상, 참선생활을 중시한다. 속세를 떠나 은수(隱修), 은둔하며 구도를 향해 불사르는 이들을 보면 참 아름답다.
미니멀한 삶에 절제미가 있는 삶이다. 수행자가 된다, 함은 세상을 쉽게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는 단순하게 쉽게 살겠다는 얘기다. 선원이나 아쉬람 같이 공동생활 위주로 수행생활있고 은자 혹은 은둔자, 단독으로 독살이라 하여 홀로 생활하는 이들도 있다. 수행자들은 대체로 외딴 곳, 사람들이 잘 찾아올 수 없는 떨어진 곳에 사는 경우가 많다.
엄격하고, 체계적인 수행의 과정을 거친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서로 크게 간섭하거나 종속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거주이전과 여행의 자유가 있듯이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듯이 나갈 때도 자유다. 그렇듯 개인의 의지로 구도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수행생활을 그만두고 나가는 걸 막지 않는다.
허공사 주지로 떠돌다 떠돌다 내가 처음 현계산으로 들어왔을 때, 내겐 걸망 하나 뿐이었다. 걸망 속에는 발우와 가사장삼, 석문의범, 금강경 뿐이었다. 그리고 먼저 장만한 건 비닐이었다. 봄이었다. 산에 올라가 낙엽송 쓰러진 걸 주어와 비닐로 움막을 지었다. 물론 그 움막의 수준은 센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얼기설기 그저 찬 바람과 이슬을 막아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움막을 짓고 나서 읍내 나가는 버스를 타고 저자거리로 나갔다.
마침 장날이었다. 냄비를 샀고 양푼을 샀다. 시장통에서 네모난 커다란 깡통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 철물점으로 갔다. 걸망을 철물점 앞에 내려놓았다. 걸망에는 쌀 반말과 라면, 그리고 국수, 간장, 소금 따위가 들어 있었다. 양철을 자를 수 있는 전정가위를 구했고 페인트가 들어 있던 깡통은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이 되었다.
드디어 이윽고 마침내, 먹고, 자고, 쌀 수 있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거였다. 좋았다? 기뻤다? 그 기분을 넘어 황홀했다고 할까.
<그대 무엇 때문에 이 지랄을 하시는가?>
<얽매임과 장애를 벗어나 살려고, 살아보려고.>
혼자 묻고 혼자 대답했다.
머물기 위해 떠돌았던 길들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건 물 때문이었다.
암자 터 뒤에 작은 바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 밑으로 그리 크지 않은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돌로 바닥을 긁어 보았다. 석간수가 흐르고 있었다.
그랬다. 산이 나의 서식지가 된 거였다. 나의 서식지는 숲이었다. 산을 내려가면 논과 밭, 들판, 벌판, 하천, 연못, 냇물, 저자거리로 내려가는 산길이 있었다. 그랬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마음이지만 마음 스스로 그 마음이 될 수 없으므로 천하만물과 대상, 사건, 사고 그 만남과 나눔, 識에 의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낮은 곳으로 흐를 수 있는 곳. 막히면 돌아갈 수 있는 곳. 절터골로. 온갖 오물도 마다하지 않는 곳. 어떤 모양의 그릇과도 하나 될 수 있는. 단단한 바위도 뚫어낼 수 있게 해봐야지, 장엄하게 투신하는 폭포와 같은 용기를 가져야지. 그렇게 저 물들과 함께 흘러 흘러 끝내 화엄의 바다에 다다라야지, 하며 무릎을 꿇고 엎디어 기도했다.
기도 후에 일어나 환희심에 양팔을 하늘로 뻗고 소리쳤다. 관념적인 삶이 아니라 실천적인 삶으로의 진입이랄까. 몸이 마음이고 마음이 몸이 되는. 마음을 그대로 깨달을 수 없으니 몸을 깨달으면 마음은 저절로 깨닫게 되리라, 하며. 좋았다? <사사입리(舍事入理), 현상즉본체(現象卽本體). 이것이 곧 수묘((數妙)>라, 하며 <이르되 알아가겠습니다>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기뻤다? 좋았다? 그 기분을 넘어 황홀했다고 할까 환희심에 행복하다 할까.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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