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산 채로 옷벗는 가을 산의 작은 나무들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11.12 08:00 의견 0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참선 염불하는 것도 좋지만 고요속에 조용조용 농사짓는 것도 참 좋다.

시인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 했다. 여기서 마가리는 ‘오막살이’라는 뜻인데 평북, 함남의 방언이다.

서울, 수도승首都僧이었을 때는 이거저거 가진 게 많았다. 옷도 여러가지였고 신발도 그랬다. 교통카드가 있어야 했고 단골로 가는 마트에 할인 회원권도 있어야 했다. 토굴로 얻어놓은 차고방에 번호키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자유로운 수도승修道僧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자연인이 되고싶었다.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십년을 별렀다. 그렇게 어렵게 산중의 마가리, 오막살이로 들어왔더니 공기좋고 경치가 끝내주었다. 오막살이는 나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육조단경에 보면 밖으로 모든 대상에 대해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음이 좌 座이고, 본성本性을 보고 어지럽지 않음이 선禪이다, 라 했던가.

선禪, 좋았다. 참 좋았다. 나한테 딱 맞았다. 그런데 먹을 거리가 없는 거였다. 산나물, 찔레, 싱아, 머루, 풀뿌리 나무껍질을 벗겨 삶아먹고만 살 수 없었다. 수처작주, 내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 산중에 들었는데 먹고사는 문제가 큰 문제가 된 거였다. 자유인이 되려면 어찌할까.


그러나 젊었기에 두려움도 공포도 없었다. 마음이 부처라 했던가, 행선行禪하면 됐다. 나의 행선은 쌀 떨어지면 나가서 일했다. 젊었고 무서운 게 없었다. 일 주일 일하니 한 달을 안락하게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 노는 밭을 빌렸다. 김준태 시인의 시를 이미영이 노래로 만든 「부서지지 않으리」라는 노래를 부르며 삽질을 했었다.

사라진다는 것 부서진다는 것

구멍이 뚫리거나 쭈그러진다는 것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서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

그것은 깊은 바닷속 물고기처럼

지느러미 하나라도 잃지 않고

이 세상 구석구석 살아가며 끝없이 파란 불꽃을 퉁긴다

사라진다는 것 부서진다는 것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서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

파아란 불꽃 튕기기가 외로웠던가, 뜨거웠던가. 저 산속의 나무들 또 한 철 보냈다고 고개 끄덕이며 바라봐 주어 고맙다고 하나 둘 내려와 꾸뻑 인사를 하고 다시 산으로 기어 올라간다.

내일은 추워진단다. 낡고 닳은 두꺼운 승복을 꺼내놓다가 "아직도 내 몸에 정신이 붙어있구나, 사랑사랑 아이고 모두가 내 사랑"하며 혼자 웃음 웃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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