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를 논할 때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김대중’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를 관통하는 그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좌우익의 극한 대립 속에 거대한 생존의 위협에서도 끝까지 견뎌낸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를 상징하는 표현인 ‘인동초’는 김대중의 삶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 정치는 여전히 혼탁한 가운데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리더’가 이제는 사라진 듯하다. 이 책은 김대중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최고의 김대중 전문가를 통해,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리더의 모습을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을 통해 발견한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통일 등 다방면에 철학과 식견을 쌓은 김대중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진정한 리더’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국내에서 저평가되는 김대중을 왜 세계에서는 극찬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길 잃은 한국 사회에 제시할 단 하나의 리더십
_다시 소환되는 김대중 리더십
김대중은 박정희, 노무현에 밀려서 전직 대통령 평가 3위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의 저평가와 다르게 해외에서는 대단히 높이 평가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서의 김대중 재평가 필요성을 의미한다. 사실 김대중은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김대중 재평가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특히 김대중의 지지 기반이었던 민주-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온건 보수 진영 내에서도 김대중 정치, 김대중 리더십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이 나오고 있다. 하여, 새로운 대통령 리더십, 새로운 국가 비전을 세워야 하는 이때야 말로 김대중 리더십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현대 정치인을 역사적 접근으로 제대로 다룬 교양서
_한국 현대사에서 김대중의 활동과 영향을 종합적으로 다루다
김대중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러 각도에서 이뤄질 수 있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이론이 없을 정도로 합의될 수 있는 지점은 김대중이 한국 현대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인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이승만, 박정희와 비슷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김대중은 7대 대선후보로 선출된 1970년부터 서거한 2009년까지 40여 년 동안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김대중은 필수적인 인물이다. 집권 5년의 대통령 재임 기간뿐만 아니라 대통령 이전 시기인 민주화 투쟁, 야당 활동 시기에 매우 중요한 역사적 행위자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대중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기만 하다. 특정 개별 정책에 대한 연구가 부분적으로 이뤄졌을 뿐이다. 김대중의 정치철학, 실천,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김대중의 활동 시기, 내용, 영향 등이 너무 광범위하고 시간적으로도 길어서 이것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김대중 연구의 기본 자료가 되는 주요 사료에 대한 발굴 및 정리 등이 최근 이뤄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대중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그 성과물을 내왔다. 가장 오래된 자료에서부터 희귀 자료는 물론이고 가장 최근의 자료에 이르기까지 두루 고찰하여 그 결과를 이 책에 담아냈다.
_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실패한 대통령, 무능한 정치’ 담론에 정면으로 문제제기하다
한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표현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문화적, 관습적으로 금기시된 것이 아님에도 언론보도에서도, 학문적인 글에서도, 심지어 일반 시민들의 SNS에서도 찾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능한 정치’라는 말도 찾기 힘들다. 그러면 이것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문제는 무엇인가?
먼저 한국 현대사를 보면 퇴임할 때와 퇴임 이후에 불행한 모습을 보인 대통령이 많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민주혁명에 의해 자진 하야한 뒤 미국으로 출국했다. 사실상 민주혁명에 의해서 대통령직에서 축출된 뒤 미국으로 추방당했다고 볼 수 있다. 제2공화국은 5.16쿠데타에 의해서 무너졌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18년 장기독재를 하다가 최측근 인사에게 암살당했으며,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퇴임 이후 12.12쿠데타와 5.18 관련해서 법적인 처벌을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말기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국란인 IMF위기를 초래하여 퇴임 이후 정치적 영향력이 상실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자살이라는 비극적 선택을 했으며,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은 각종 범죄 혐의로 현재 수감 중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을 당해 임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도 못했다. 국민적 환호와 영광 속에 출발했던 한국의 대통령들이 이처럼 불행한 모습을 보인 경우가 많다 보니 ‘실패한 대통령’ 담론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_뿌리 깊은 자학적 역사관을 바꿔줄 리더십을 발견하다
‘실패한 대통령, 무능한 정치’ 담론이 확산된 데에는 정치인 탓도 크지만 한국 사회에 뿌리박힌 정치혐오론과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대통령·정치인·정치에 대해 긍정적·생산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시각이 기본으로 전제된 것이다. 밝은 측면은 배제하고 어두운 측면은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보니, 정치의 긍정적 기여와 역할에 대한 논의 자체가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리고 그 관성이 지속되어 이제는 역사가 된 사실과 대상에 대해서도 권력 비판의 시각이 유지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통령 리더십, 대통령의 역사, 정치의 성공과 기여에 대한 담론이 우리 사회에 없다시피 하다.
이것은 자학적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부정적 폐해가 크다. 불행한 대통령이었다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권력은 양날의 검과 같고 권력자는 그 칼날 위에 있어 조금만 균형을 잃으면 자기 몸이 난자당할 수 있는 위험한 처지에 있는 존재다. 권력 자체가 이러한 속성을 갖고 있고, 여기에다가 한국적 현실과 문화까지 영향을 주어 불행한 대통령이 많이 나왔다. 정계 입문 전 대단히 높이 평가받던 사람도 정치인이 된 이후 정치인 이전의 사회적 명성을 유지한 경우는 전무할 정도다. 그만큼 정치는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실패한 것과 성공한 것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의 이러한 불행한 역사관에 자부심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김대중이다. 김대중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마지막 일기에 남긴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는 말의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의미를, 그리고 투쟁해온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큰 리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_지은이 장신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정치논객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2년 초 첫 책 <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노무현 필승론>에서 “노무현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어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여 크게 주목받았다. 2002년 대선 전에는 정치칼럼 사이트인 ‘서프라이즈’를 공동 창간했고 <노무현, 반DJ 신드롬을 넘어서>를 내는 등 원조 친노로서 활동했다. 그런데 인터넷 공간이 극단화되는 것에 크게 실망하여 논객 활동을 중단하고 대학 시절부터 관심을 두어온 김대중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 재직하고 있다. 김대중에 대한 ‘41차 구술 인터뷰 작업’에 참여했고, <김대중 연보>, <김대중 전집>(전30권) 등 김대중 관련 주요 연구 자료집 출간 작업에 참여했다. 김대중의 정치사상과 활동에 대한 연구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지은 책으로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와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등이 있다.
■ 시대의창 펴냄 / 값 25,000원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