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업의 고양일상】 이웃의 텃밭을 탐하지 않고서도

자연의 규칙에 합당한 인간의 규칙이 필요하다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승인 2021.07.02 14:12 | 최종 수정 2021.07.05 11:16 의견 0

일터 주변에 가로 두 발짝, 세로 열 발짝 쯤 하는 텃밭을 가꾼다. 중랑천이 곧 한강과 만나는 천변 근처다. 구청에서 공간을 마련해 해마다 추첨을 통해 분양하는 1년 소유의 텃밭이다. 매년 경쟁률이 7~8대 1이 될 정도로 치열하다. 지난해는 그래서 반만 지었다. 이웃과 나눠서 밭을 지었기 때문이다. 중간쯤 있는 내 밭 번호가 180번이니, 이곳엔 300여 개 정도의 ‘개인 텃밭’들이 모여있다. 말하자면 ‘텃밭들의 공원’이고 자연스럽게 남의 밭에도 눈이 가게 된다.

이곳 텃밭에는 몇 가지 인간의 규칙이 있다. 이곳은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여섯 시까지 열어놓는다. 휴일도 물론 없다. 스물네 시간 언제나 열려있는 아파트 주차장 같은 곳이다. 이곳에도 서로 인정들이 통해서, 얼굴을 아는 이웃들끼리는 서로의 밭에 품앗이도 있다. 그 집 텃밭이 말라 있으면 물 몇 초롱이라도 준다. 뒤에는 그가 내 텃밭에 물을 준다. 키가 커지는 작물은 심지 말 것. 주변 작물들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로 이웃의 밭작물을 탐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보고 배우는 건 가능하다.

자연의 규칙이 여기 텃밭에는 더 강력하다. 단순하지만 한결같다. 땅에는 어디에나 햇살이 비춘다. 비도 고루 내린다. 흙은 한결같이 자신에 뿌리내린 작물을 단단히 붙들어준다. 내 작물이 잘 자라라고 뿌린 퇴비들이겠지만 땅은 잡초들에게도 그 영양분을 나누어준다. 이미 작물 틈새마다 잡초가 비집고 들어갔다.

오늘은 텃밭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다. 자연의 규칙을 어겼다. 애초 작물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몰랐던 무지도 한 몫 했다. 가지와 고추를 십여 센티쯤 옮겨 심은 것이다. 묘목으로 사올 때 가지거나 오이거나 고추거나 토마토거나 아기 주먹만한 작은 검정 포트에 담겨있었다. 크기도 비슷비슷해서 한 뼘 남짓이나 했고 굵기도 젓가락보다 가늘었다. 그러니 되는 대로 심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자라는 과정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 작물들이 어떻게 자라나는 애들인지 무지했다. 시작할 때 고려했어야 할 중간과 끝을 고려하지 못했다.

애초 설계가 잘못됐다. 내 밭만 있을 때라면 몰랐을 텐데 주변 텃밭과 비교하자 내 농사의 형편이 보였다. 토마토는 무성하게 가지를 뻗으며 한없이 자랐다. 상추처럼 그때그때 잎을 뜯어먹는 애가 아니다보니 빨갛게 열매가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탓이다. 오이와 호박으로 가면 사정은 더했다. 줄기가 뻗어가는데 그냥 두면 다른 작물들을 죄다 덮칠 판이다. 기둥을 박고 끈을 이어서 줄기들이 자랄 터를 마련하느라 가지와 고추가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구 나오는 가지를 쳐가면서 땅에 대를 세우고 높이 올리는 ‘인간의 공법’이 필요했다.

이웃 밭의 오이들은 위로 자랐다. 간이 지붕까지 만들어 그 위를 타고 간다. 그의 텃밭은 밭 전체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그렇게 해도 이웃의 밭을 별로 방해하지 않는다. 토마토들 역시 곧게 위로만 뻗었다. 그 아래로 포도송이같이 열매가 맺혔다. 그는 그 밭에서 벌써 100여 개의 오이를 따고 수 회의 토마토 수확을 했다. 가지들도 대롱대롱 달렸다. 무성한 잎들을 떼어내고 나니 힘은 열매에 집중되고 그러니 소출이 많다. 작물을 훨씬 더 많은 햇살을 받는다. 제멋대로 무성히 잎을 내다가 땅에도 열매가 휩쓸리고 여기저기 다른 작물에까지 잎을 부대끼는 내 작물에도 나름 열매가 맺힌다. 그 작물이라고 잘못된 ‘식물의 생활’을 하는 비행 작물인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르게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위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의 인생도, 아이들의 삶도 그럴 것이다. 개인 텃밭만 보아선 몰랐을 풍경이다. 이웃의 텃밭과 서로 공존하며 함께 넘나들기에 알 수 있는 이야기다. 공동텃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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