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로 세상읽기】 알베르 카뮈의 문학과 실존주의

김위영 산업번역 크리덴셜 대표 승인 2021.11.22 09:02 의견 0

Rebellion proves, in this way, that it is the very movement of life and that it cannot be denied without renouncing life. Its purest outburst, on each occasion, gives birth to existence. Thus, it is love and fecundity or it is nothing at all. --Albert Camus <The Rebel>, P.246

반항은 그것이 바로 생의 운동이라는 것을, 삶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반항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반항의 가장 순수한 부르짖음은 그때마다 한 존재를 일으켜 세운다. 그러므로 반항은 사랑이요 풍요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알베르 카뮈 <반항하는 인간> 중에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철학자다. 젊은 시절 장 그르니에를 만나 사상적 스승으로 삼은 그는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다. <페스트> 출간 후인 1957년에 43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나, 1960년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노벨상 수상식에서 카뮈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완벽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 부정에 대한 작품은 <이방인>, <칼리굴라>, <시지프스 신화>이다. 둘째, 긍정에 대한 작품은 <페스트>, <반항하는 인간>이다. 셋째, 사랑에 대한 작품은 지금 계획 중이다.” 그러나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 <The Stranger(이방인, 1942)>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 장례식장에 울지도 않고, 다음날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즐기고 사랑을 나눴다. 아랍인과 싸움이 일어나 살인을 한다. 사회통념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회부적응자로 계획적인 살인을 저질렀다며 검사와 배심원은 사형을 선고한다. 뫼르소는 어머니와 소원해진 관계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햇살이 너무나 눈부셔서 머리가 아팠고, 방아쇠를 당긴 건 우연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낯선 존재이며,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부조리라는 것이 소설의 중심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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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n died today. Or yesterday maybe, I don't know. I got a telegram from the home: “Mother deceased. Funeral tomorrow. Faithfully yours.” That doesn't mean anything. Maybe it was yesterday. --P 3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I shook off the sweat and sun. I knew that I had shattered the harmony of the day, the exceptional silence of a beach where I'd been happy. Then I fired four more times at the motionless body where the bullets lodged without leaving a trace. And it was like knocking four quick times on the door of unhappiness. --P 59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나는 그날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총탄이 흔적도 없이 박혀버린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Anyway, it was one of Maman’s ideas, and she often repeated it, that after a while you could get used to anything. --P 77

사실 이건 어머니의 생각이었는데, 어머니가 늘상 말하기를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익숙해지는 법이라고 했다.

Since we’re all going to die, it’s obvious that when and how don’t matter. Therefore(and the difficult thing was not to lose sight of all the reasoning that went into this “therefore”), I had to accept the rejection of my appeal. --P 114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이기 때문에 언제 죽든 어떻게 죽든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그리고 어려운 일은 ‘그러므로’라는 말이 나타내는 모든 추론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내 항소의 기각을 받아들여야 했다.

Finding it so much like myself —so like a brother, really—I felt that I had been happy and that was happy again. For everything to be consummated, for me to be feel less alone, I had only to wish that there be a large crowd of spectators the day of my execution and that they greet me with cries of hate. --P 123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행복했었고, 다시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끼도록,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 <The Plague(페스트, 1947)>

소설의 무대는 알제리 해안에 있는 인구 20만의 평범한 도시 오랑이다. 1940년 4월 16일 아침, 이 소설의 서술자이며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진료실에서 나오다가 죽은 쥐 한 마리를 밟는다. 불길한 징조다. 국가는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 전제를 봉쇄한다. 마치 2019년 COVID19의 세계와 똑같다. 페스트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태도를 볼 수 있다. 도피하는 인물(기자 랑베르), 저항하는 인물(행정서기 그랑), 순응하는 인물(성직자 파늘루), 환영하는 인물(아웃사이더 코타르), 기록하는 인물(타루)과 페스트와 묵묵히 싸워나가는 연대와 성실성을 나타내는 의사 리유이다. 공동체의 위기 속에서 개인은 어떤 삶의 윤리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또한 페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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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stilence does not have human dimensions, so people tell themselves that it is unreal, that it is a bad dream which will end. But it does not always end and, from one bad dream to the next, it is people who end, humanists first of all because they have not prepared themselves. --P 30

역병은 인간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언젠가 끝날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면서 끝나버리는 사람은,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Rieux shook himself. This was certainty: everyday work. The rest hang by threads, and imperceptible movements; one could not dwell on it. The main thing was to do one’s job well. --P 33

리유는 몸을 떨었다. 이것은 확신이었다. 매일 매일의 노동. 바로 거기에 확신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는 실오라기와 무의미한 동작에 얽매여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머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But I have to tell you this: this whole thing is not about heroism. It’s about decency. It may seem a ridiculous idea, but the only way to fight the plague is with decency. --P 125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말해야 했다. 모든 일은 영웅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품위에 관한 것이다. 이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보였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품위를 지키는 것이다.

I always thought that I was a stranger in this town and had nothing to do with you. But now that I have seen what I have seen, I know that I come from here. whether I like it or not. This business concerns all of us. --P 162

나는 항상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볼대로 다 보고 나니,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사건은 우리들 모두에게 관련된 것이다.

All that a man could win in the game of plague and life was knowledge and memory. --P 224

사람이 페스트와 인생의 싸움에서 이긴 모든 것은 지식과 추억이었다.

He knew that this happy crowd was unware of something that one can read in books, which is that the plague bacillus never dies or vanishes entirely, that is can remain dormant for dozens of years in furniture or clothing, that is waits patiently in bedrooms, cellars, trunks, handkerchiefs and old papers, and that the day will come when, for the instruction or misfortune of mankind, the plague will rouse its rats and send them to die in some well-contented city. --P 238

리유는 이 기뻐하는 군중들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페스트 바이러스는 결코 죽거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가구나 옷에 수십 년간 휴면 상태로 있을 수 있으며, 침실,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에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가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한 날이 오면 쥐를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한다는 사실이다.

◆ <The Rebel(반항하는 인간, 1951)>

<페스트>와 <반항하는 인간>은 ‘긍정(부조리에의 반항)’의 핵심 주제이기 때문에 <페스트>를 잘 이해하려면 <반항하는 인간>을 읽어야 한다. 카뮈의 철학적 사유가 담긴 에세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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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ellion is the common ground on which every man bases his first values. I rebel—therefore we exist. --P 10

반항은 모든 인간이 최초의 가치를 정립한 공통 토대이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To the ‘I rebel, therefore we exist’, he adds, with prodigious plans in mind which even include the death of rebellion: ‘and we are alone.’ --P 57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에다가 마음속의 거대한 계획들인 반항의 사멸까지를 포함하여 덧붙인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다.’

The idea of progress is contemporary to the age of enlightenment and to the bourgeois revolution. --P 142

진보의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 그리고 부르주아 혁명의 시대와 동시대의 산물이다.

The logic of the rebel is to want to serve justice so as not to add the injustice of the human condition, to insist on plain language so as not to increase the universal falsehood, and to wager, in spite of human misery, for happiness. --P 227

반항하는 인간의 논리는 인간 조건에 불의에 더하지 않기 위해 정의에 봉사하고, 명료한 언어로 주장하여 세상의 거짓을 증가시키지 않고, 인간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행복에 내기를 걸고자 하는 것이다.

Origin of form, source of real life, it keeps us always erect in the savage formless movement of history. --P 243

형태의 어머니요 진정한 삶의 원천인 반항은 역사의 야만적인 형태가 없는 광란의 운동 속에서 항상 올바로 서도록 우리를 지탱해준다.

Then we understand that rebellion cannot exist without a strange form of love. --P246

이제 우리는 반항이란 하나의 기이한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 <The Myth of Sisyphus(시지프스 신화, 1955)>

<이방인>과 짝을 이룬 철학적 통찰에 연유한 이론적 실천서이다. <이방인>, <칼리룰라>와 함께 부조리 3부작을 이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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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but one truly serious philosophical problem, and that is suicide. Judging whether life is or is not worth living amounts to answering the fundamental question of philosophy. --P 3

진정으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The absurd is born of this confrontation between the human need and the unreasonable silence of the world. This must not be forgotten. --P 28

부조리는 인간의 필요와 세계의 비합리적인 침묵 사이의 대립에서 생겨난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The absurd is essentially a divorce. It lies in neither of the elements compared;it is born of their confrontation. --P 30

부조리는 본질적으로 이혼이다. 그것은 비교되는 요소의 어느 쪽에도 있지 않다. 부조리는 요소의 대립에서 태어난다.

Thus I draw from the absurd three consequences, which are my revolt, my freedom, and my passion. By the mere activity of consciousness I transform into a rule of life what was an invitation to death -- and I refuse suicide. --P 64

나는 부조리에서 3개의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것은 나의 반항, 나의 자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Even humiliated, the flesh is my only certainty. I can live only on it. The creature is my native land. This is why I have chosen this absurd and ineffectual effort. This is why I am on the side of the struggle. --P 87

굴욕을 당하더라도 육체는 나의 유일한 확신이다. 나는 오직 육체로만 살 수 있다. 피조물은 나의 조국이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이 부조리하고 보람 없는 노력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투쟁의 편에 선 것이다.

The struggle itself toward the heights is enough to fill a man's heart. One must imagine Sisyphus happy. --P123

정상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스를 상상해야 한다.

◆ <How to Be an Existentialist(실존주의자가 되는 방법, 2009)>

영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Gary Cox(게리 콕스, 1964~ )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실존주의자에 대한 책을 저술했다. 저자는 실존주의가 희망적이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담은 철학이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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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stentialism is all about freedom and personal choice. It is all about facing up to reality with honesty and courage and seeing things through to the end, as well as being about putting words like choice in italics. --P 3

실존주의는 자유와 개인의 선택에 대한 모든 것이다. 성실과 용기를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고 사물을 철저하게 통찰할 뿐만 아니라, 선택이라는 단어를 이탤릭체로 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Existentialism, as said, is all about freedom. At the heart of freedom is choice and at the heart of choice is action. Action, then, is at heart of existentialism, just as it is at the heart of human existence. ‘to be is to do’ says Sartre, summing up just how important he considers action to be. if people know only one thing about existentialism it tends to be the maxim, ‘To be is to do.’ --P 5

실존주의는 자유에 대한 철학이다. 자유의 핵심에는 선택이 있으며, 선택의 핵심에는 행동이 있다. 그러므로 실존주의의 핵심 혹은 인간존재의 핵심에는 행동이 있다. 사르트르는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약하면서 “존재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사람이 격언이 되고 있는 실존주의에 대해 아는 한 가지가 있다면 ”존재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So, the true existentialist knows about existentialism, believes in existentialism and continually strives to live according to existentialism. He or she continually strives to overcome bad faith and to achieve what existentialist philosophers call authenticity. --P9

진정한 실존주의자는 실존주의를 알고 믿으며, 실존주의에 따라 살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실존주의자는 끊임없이 나쁜 신념을 극복하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진정성’을 성취하려고 애쓴다.

With specific regard to people, ‘existence precedes essence’ refers to the view that each person exists first, without meaning or purpose, and strives thereafter to give himself meaning and purpose. --P 17

사람에 특별히 고려하여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인간은 아무런 의미나 목적 없이 먼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자신에게 의미나 목적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견해를 말한다.

Be a true existentialist, be authentic, seize your freedom, seize the day. Carpe diem as the noble Romans used to say. --P 107

진정한 실존주의자가 되어라. 진정하게 살아라. 자유를 움켜쥐어라. 오늘을 즐겨라. 고귀한 로마인들이 말한 대로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 <At the Existentialist Cafe(실존주의자의 카페에서, 2016)>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교수인 Sarah Bakewell(사라 베이크웰, 1963~ )은 사르트르, 시몬 보부아르, 카뮈, 하이데거, 야스퍼스, 후설, 메를로 퐁티 등 실존주의자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중에서 카뮈에 대한 글만 몇 개 간추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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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rance, Gabriel Marcel attacked Jean Paul Sartre, Sartre fell out with Albert Camus, Camus fell out with Merleau-Ponty, Merleau-Ponty fell out with Sartre, and the Hungarian intellectual Arthur Koestler fell out with everyone and punched Camus in the street. --P 30

프랑스에서는 가브리엘 마르셀이 장 폴 사르트르를 공격했고, 사르트르는 카뮈와 절교했으며, 카뮈는 메를로 퐁티와, 메를로 몽티는 다시 사르트르와 절교했고, 심지어 헝가리 출신 지식인 아서 쾨슬러는 모든 사람이 있는 길거리에서 카뮈에게 주먹을 날리며 절교했다.

Yet he did not let this mood stop him from working on literary projects: a novel, L’etranger(The stranger or the outsider), a long essay, The myth of sisyphus, and a play, Caligula. He called these his ‘three absurder’, because they all dealt with the meaninglessness or absurdity of human existence, a theme that seemed to come naturally during this time. --P 138

그러나 카뮈는 이런 분위기로 문학적 구상에 대한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소설 <이방인>, 장편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 희곡 <칼리굴라>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이들을 ‘부조리 3부작’이라고 불렀는데 작품 모두가 인간 실존의 무의미함 또는 부조리함을 다루고 있으며, 당시에는 이런 주제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After an initial hesitancy, Camus came out firmly against the death penalty. Cold, judicial killing by the state was always wrong, he said, however, serious the offence. --P 162

카뮈는 처음의 망설임 끝에 사형제도에 단호히 반대하게 되었다. 아무리 중한 범죄라 해도 국가에 의한 냉혹한 사법살인은 언제나 옳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In 1957, at talk to mark his receiving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Camus was asked to explain his failure to support the rebels. He said, ‘People are now planning bombs in the tramways of Algiers. My mother might be on one of those tramways. If that is justice, then I prefer my mother.’ For Camus there could be no objective justification for either side’s actions, so his own loyalties were the only possible source of guidance. --P 246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락하는 연설을 하는 곳에서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지금 알제리 전차선로에 폭탄을 설치하고 있다. 내 어머니가 그런 전차선로 하나 위에 있을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정의라면 나는 어머니를 선택하겠다.” 카뮈에게 양쪽 모두의 행위들에 어떤 객관적인 정당성도 없었기에 자신의 충성심이 유일한 지침의 원천이었다.

◆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이었고 경계인이었다

카뮈는 사르트르와 함께 프랑스 실존주의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으나 언제나 프랑스 주류에서 소외된 이방인이었고 경계인이었다. 독일 나치의 침공에 저항하기 위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는 등 짧은 생을 치열하게 살아간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영문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Culture and Imperialism, 문화와 식민주의, 1994>에서 카뮈가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주의자라고 비판했다.

In thus confirming and consolidating French priority, Camus neither disputes nor dissents from the campaign for sovereignty waged against Algerian Muslims for over a hundred years. --P 181

카뮈는 프랑스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강화하면서 프랑스가 알제리 이슬람교도에 대항하여 1백년 이상 전개한 통치권 운동을 논의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카뮈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죄의식에서 <이방인>을 쓴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카뮈는 <이방인>의 미국판(1955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In our society any man who does not weep at his mother's funeral runs the risk of being sentenced to death. I only meant that the hero of my book is condemned because he does not play the game. In this respect, he is foreign to the society in which he lives; he wanders, on the fringe, in the suburbs of private, solitary, sensual life.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내 책의 주인공이 놀이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고를 받는다는 뜻이었다. 이런 면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사는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사적이고 고독하고 관능적인 삶의 주변에서 방황한다.

현재에도 실존주의 철학과 카뮈의 문학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카뮈의 ‘부조리’는 인간의 추구하는 합리성과 비합리적인 상태로 살아가는 세계와의 대립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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