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걷는 거야. 여기 대관령 꼭대기에서부터 저기 산 아래 할아버지 댁까지. 다른 사람들은 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너하고 나하고만 걸어서. …우리는 그냥 걷는 게 아니라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네가 아빠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하면 되지 않겠니? 또 이렇게 걷다보면 집에 있을 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거고. …걷는 방법에 대해서는 미리 말하지 않으마. 이제 그것도 네 스스로 깨달아야 할 일 중의 하나니까. -이순원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중에서
그때 작가와 함께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걸어 내려갔던 그의 큰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그런 형을 한없이 부럽게만 바라보던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작가는 무엇을 일부러 계획하고 대관령을 걸어 내려갔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이와 함께 그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걸으면서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걷기만 하면 그런 것들은 저절로 걷는 걸음 사이로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게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니까 그동안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때 그들이 걸었던 대관령에는 길이 새로 뚫렸다. 아흔아홉 굽이의 구불구불한 길이 아니라 대관령 꼭대기에서 강릉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는 직선도로가 산허리를 뚫고 새로 놓였다. 그뿐 아니다. 이번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경강선이 개통되면서 KTX는 그 길을 더욱 줄여놓았다. 그리고 그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는 어느덧 성혼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때 제가 그 말을 했어요.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셔서 제가 태어난 집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고요. 그때 제가 울었던 것 알아요? …포크레인으로 툭 하고 살짝 쳤는데도 힘없이 금방 집이 무너졌어요. 할아버지가 태어나시고 제가 태어난 집이요. 제가 우니까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할아버지가 아빠들한테 자리를 내주듯 헌집이 새집한테 자리를 내주는 거라구요. 그런데 그 말씀을 들으니까 더 슬펐어요. 정말 이다음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자리까지 아빠들한테 내주고 하늘나라로 가시면 어떻게 하나 하고요.
사람들은 이제 쓸모를 잃어버린 옛길은 잊은 채 새 길로만 냅다 치달려 마침내 강릉의 바닷가에 이른다. 거기 경포대의 철 지난 백사장을 추억으로 거닐거나, 아니면 안목의 커피거리쯤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대관령 옛길이 그나마 쓸모를 되찾는 것은 선자령 눈꽃트레킹의 출발지로서나, 눈 덮인 양떼목장으로 가는 들머리로서다. 선자령 정상은 해발 1157미터로 무척이나 높다. 하지만 등산을 시작하는 옛 대관령휴게소 일대가 이미 해발 840미터 지점이기 때문에 실제 표고차는 317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그 거리만큼 우리는 이득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그 어떤 것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빠에게 이 길은 이미 이 길을 만들기 전부터 어떤 의미가 있었던 길이었으니까. 아마 이 길은 수천 년 전부터 있어 왔을 거야. 처음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런 발자국들의 흔적이 모여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오솔길이 되었을 테고, 그 다음엔 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되었을 테고….
추억 속 아이의 손을 잡고 대관령 눈길을 걸어보자. 대관령북부휴게소에서 양떼목장 입구를 지나 대관령기상관측소 방향으로 30분쯤 걷다보면 국사성황당이 나온다. 강릉에 단오장이 열릴 무렵, 이곳 대관령 성황당과 산신각에서는 국사성황제가 열려 단오절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곤 한다. 지금은 한겨울이지만 산신각 아래 기원굿이 끊이지 않으니 숲은 내내 술렁인다. 그 기원이, 그 연면한 삶이 대관령 길을 이어왔다. 그렇지만 여기서부터는 그 기원에도 아랑곳없이 험한 오르막길이 힘겹게 이어진다. 입에서는 헉헉대는 소리와 함께 단내가 풍겨 나온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귀밑은 세찬 바람에 떨어져나갈 듯하다.
아빠. 응. 아까 아빠가 한 굽이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걸어보자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도 한 번 그렇게 걸어봐요. 이번 굽이도 꽤 긴데? 그래도요. 그래,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꾸나. 대신 아까처럼 중간에서 아빠를 부르기도 없기다. 알아요. 이번에는 안 그럴 거예요. 그럼 지금부터 말하지 않는 거야. 예. …. ….
무슨 말을 하겠는가. 산마루에 서면 발 아래로 눈 덮인 대관령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멀리 강릉 시내와 동해의 쪽빛 바다가 해무가 낀 듯 다소 거무스레하지만, 그래도 가슴이 탁 트일 만큼 시원하고 아름다운 풍광이다. 그래, 이토록 드넓은 세상에서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아이는 아이의 길을 간다. 서로 갈라지고 서로 이어지면서.
길을 걸어가며 바라보는 풍경도 그렇고요. 굽이마다 비슷해도 똑같은 건 아니잖아요. 나무도 다르고, 풀도 다르고, 불어오는 바람도 다르다고 아빠가 그랬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 다르듯이요.
눈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 않다. 대관령 양떼목장에 잠시 들러 양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겨우내 양들은 우리 안에 갇혀 있지만 ‘침묵’하지는 않는다. 먹을 것을 달라고 졸라대고, 몸이 근질거린다고 보채댄다. 그것이 삶의 모습이다. 이번에는 당신 차례다. 움츠렸던 몸을 펴고 사랑스런 아이와 함께 눈밭을 마음껏 뒹굴어보라. 우리가 가야 할 그 먼 길에서 그 시간은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리니.
그렇게 대관령 길을 다 내려와 집으로 들어가는 샛길의 작은 고개를 넘어설 때였다. 아이는 아까부터 바짝 옆에 붙어서서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빠하고 같이 걷기는 하지만 조금씩 무서운 생각도 들 것이었다. 아이의 숨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그때 그 길 저쪽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아이가 뛰어가는 어둠 저 편에 이제는 오랜 세월 속의 기다림으로 등이 굽고 작아진, 그러나 그 세월의 무게로 우뚝한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그 길을 가고, 언젠가 아이도 그 길을 갈 것이다. 아버지….
─
강릉 출신의 작가 이순원은 ‘아들과 함께 걷던 길’을 아예 강릉을 상징하는 길로 바꾸어냈다. 이른바 ‘강릉바우길’이다. ‘제주올레길’ ‘지리산길’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둘레길로 자리 잡은 강릉바우길은 2009년 무렵 작가와 지인들의 지나가는 이야기 속에서 비롯했다. 작품을 통해 필례약수터 자락에 ‘은비령’이라는 지도상에도 없는 지명을 탄생시키기도 한 작가는 아무래도 그 방면에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모양이다. 백두대간 대관령에서 경포와 정동진까지 산맥과 바다를 아우르며 걷는 이 길은 총 연장 400km로, 강릉바우길 17개 구간, 대관령바우길 2개 구간, 울트라바우길, 계곡바우길, 아리바우길로 이루어진다. 어느 길도 어린 아이들을 앞세우고 온 가족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솔향기 물씬한 길이다.
저작권자 ⓒ 고양파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