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의 문화누리】 ‘스우파’ 이어 ‘스맨파’ 나올까?
오광수 문화기획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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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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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는 Mnet 댄스 서바이벌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약칭이다. ‘스우파’ 출연자들이 단숨에 각종 예능을 휩쓸면서 거센 춤바람을 몰고 다니는 스타로 부상했다. 이 프로그램이 쏟아낸 각종 영상과 화제를 피할 방법이 없다. 방송은 물론 거리에서도 언제든지 ‘스우파’와 마주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된 노제, 아이키, 허니제이, 모니카, 가비 등은 억대 몸값을 받으면서 식음료, 화장품, 스포츠용품, 명품 의류, 휴대폰, 자동차 등 알짜로 불리는 광고모델을 휩쓸고 있다. 또 <유퀴즈 온 더 블록>, <놀면 뭐하니?>, <집사부일체> 등 대세 예능 프로그램들이 앞 다퉈서 이들 출연자를 섭외하여 출연시켰다. 버스광고나 지하철 광고에도 이들의 모습이 넘쳐난다.
백업 댄서로 활약하던 실력 있는 여성 크루들이 자존심을 건 배틀 열전을 펼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는 지난해 10주에 걸쳐 방송되면서 예능 부문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또 회를 거듭할수록 각종 화제를 몰고 다니면서 무명이었던 출연진들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유튜브 영상의 누적 조회 수가 4억 뷰에 이르는가 하면 이들의 공연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고 10대 댄서들의 경연 프로그램인 <스트리트 걸스 파이터>가 제작되기도 했다.
‘스우파’가 이토록 주목받은 이유는 뭘까? 우선 잘 나가는 걸그룹의 백댄서로만 인식되던 크루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전면에 등장했다. 더군다나 힙합을 하는 래퍼들이 배틀을 벌이듯 이들이 벌이는 댄스 배틀의 재미에 시청자들이 푹 빠졌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왁킹·크럼프·락킹·브레이킹 등 스트릿 댄스 전문 용어가 상식이 됐다.
연예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케이팝의 정점에 있는 케이댄스가 비로소 빛을 발했다고 해석한다. 이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싸이는 “앞으로 댄서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실 싸이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왔던 ‘강남스타일’의 인기 요인은 춤이 큰 몫을 차지했다. 독특하면서도 역동적인 ‘말춤’ 동작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영상인 이날치밴드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콜라보곡 ‘범 내려온다’는 조선의 힙합이라는 별칭답게 역동적인 춤이 한몫하고 있다. 세계적인 밴드인 콜드플레이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 협업한 것만 봐도 케이댄스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크루들의 여성성을 내세우기보다는 거친 언행으로 ‘쎈 언니’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때로 비속어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날 선 ‘거리의 언어’를 방송에서 그대로 노출시켰다. 예쁘고, 섹시한 춤이 아닌 거칠면서도 야생성이 느껴지는 춤으로 기존의 인식을 뒤집었다. 그동안 여성이 군 훈련소에 입소하여 고된 훈련을 견디고, 거친 몸싸움을 하는 축구를 하는 예능이 인기를 얻은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스우파’도 한류 열풍의 중심에 서 있다. ‘스우파’의 리더 계급 미션곡 ‘헤이마마’ 댄스 챌린지가 이어지면서 틱톡 해시태그는 2억 건이 넘었다. 케이댄스 커버 열풍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진지하게 습득해야 할 ‘케이팝 안무’로 거듭나고 있다.
이처럼 정통 무용과 스트릿댄스의 경계가 허물어진 데는 달라진 대학교육과도 큰 상관관계가 있다. 그동안 엄격한 형식과 정형화된 몸동작으로 구성된 순수예술로서의 무용이 대학에서 배워야 할 무용교육으로 인식됐지만 이제 스트릿댄스가 새로운 무용교육의 커리큘럼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식 스트릿댄스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오는 세계의 젊은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무용평론가 조하나(한양대 겸임교수)는 “전통무용과 현대무용, 스트릿댄스 등이 경계를 허물고 콜라보하는 등 기존의 무용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특히 케이팝 걸그룹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춤에 대한 창의력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스트릿댄스의 범주에 속하는 브레이킹이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의 댄서들은 각종 국제 대회를 휩쓸면서 메달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스우파’에 이어 ‘스맨파’(스트리트 맨 파이터)가 제작되는 걸 당연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은인자중하던 춤이 세상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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