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지리산 꽃그늘 아래

_봄날, 구례장터를 가다

유성문 주간 승인 2022.03.10 09:02 | 최종 수정 2022.03.10 11:07 의견 0

시작은 꽃구경이었다. 매화다 산수유다 남녘으로부터 연신 꽃소식이 치밀어 올라오니, 천성적인 나의 역마살은 설레다 못해 쿵쾅쿵쾅 피돌기를 해대는 것이었다. 날은 따뜻했고, 산이며 강이며 춘색이 완연했다. 지리산IC에서 내려서자마자 나는 남원조차 거들떠보지 않은 채 길을 내달렸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당도한 곳이 산동. 아아, 웬 말이란 말인가. 꽃은 노오랗게 노오랗게 지천을 물들이고 있었다. 상위마을에 이르기도 전에 나는 꼭 춘색에 겨워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잠시 숨을 돌려 먼 길을 바라보니, 한 아낙이 보퉁이를 이고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도 이랬다. 다만 그때는 서낭돌무지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데 보따리를 이고 진 아낙이 마을을 나서 어디론가 길을 떠나고 있었을 뿐.

산동 ⓒ유성문(2007)

잘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우리 피어보지도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골을 멍든 다리 절어절어/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없이 스러졌네 (…) 잘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못하고/ 갈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없이 스러졌네 –백부전 <산동애가> 중에서

매번 이런 식이었다. 지리산에서 스러져간 한 빨치산 소녀의 애틋한 노래는 나의 헛된 감흥을 속절없이 무너뜨려 버렸다. 이 산 골짜기마다 이런 사연 정도는 하나둘쯤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지리산의 꽃그늘은 무겁고 무겁다. 계단식 논배미거나 돌담 위로 햇살이 떨어질 때, 노래는 꽃보다 먼저 진다. 도대체 꽃구경이 웬 말이람. 나는 상위마을을 눈앞에 두고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차라리 구례구라도 가야 할 터였다. 사람의 마을이 아니라 물길을 따라 흘러내려 꽃잎처럼 떠다닐 일이었다. 그러나 그조차 발부리가 채였다. 구례구로 채 휘돌기도 전에 읍내 장터에서 나는 발이 묶였다.

구례장 ⓒ유성문(2007)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구례장은 매 3․8일로 끝나는 날 선다. 누구는 구례장터를 일러 ‘작은 지리산’이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로쇠물로부터 시작하여, 두릅, 더덕, 고사리, 취나물, 가죽나물, 도라지, 죽순 등과 산수유, 작설차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에서 나는 온갖 산것들과, 은어와 참게 같은 섬진강의 물것들, 목기와 유기 같은 지리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의 것들까지 무시로 들고나며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십상인 때문이다. 어찌 그뿐이랴. 대장간에 방앗간에, 그 일하는 손들과, 그 근육에 짠기를 돋구어줄 먼 바다에서 온 비린 생선들, 동동구르무에 품 넓은 속곳들, 철모르는 강아지까지, 어찌 보면 지리산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한 것들이 뒤섞여 형형색색을 이룬다.

구례장 ⓒ유성문(2007)


그런데 구례장터의 모습이 영판 달라져버렸다. 낡았지만 제법 관록이 있어보이던 옛 장옥들을 헐어내고, 아직 물기도 채 빠지지 않은 듯한 출처불명의 통나무들과, 기계로 찍어낸 기와모양의 슬레이트로 새 장옥을 지어 올렸기 때문이다. 볼품은 둘째 치고, 새 장옥을 지은 후 영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모두들 난리들이다. 애써 마음을 고쳐 앉아보지만, 금세 입에서는 불평이 튀어나온다. 손님들마저 ‘장 영 안되네요~잉’하며 위로를 하는 것인지, 심사를 돋우는 것인지, 연신 혀를 차댄다. 그것이 어찌 새 장옥 탓이랴. 어느덧 세상이 그렇게 글러먹은 것이다. 모두들 알면서 혀를 차고, 혀를 차면서 모른 체 한다.

구례장 ⓒ유성문(2007)

장 들목의 난장에 나앉은 토지할머니는 본명이 황옥순으로, 운조루가 있는 토지면에서 왔기에 그렇게들 부른다. 아들네미가 피아골에서 민박을 치는데, 지리산을 놀삼아 다니는 것들은 모두 그를 알 꺼라 했다. 여느 할머니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식들은 말리지만 집에서 놀고 있으면 뭐하느냐고, 그래서 나선 것이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팔거리라 해봤자 고작 묵 몇 모와 콩나물 한 동이로, 모두 집에서 키운 것들이라고 했다. 다 팔아봤자 2~3만원도 채 안될 거였고. 아침이면 마을 앞 신작로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장에 오고, 저녁에는 버스 타고 내려 한참을 걷거나, 운 좋으면 트럭이라도 얻어타고 집으로 간다. 그리 보면 집에서 말리는 것도 꼭 빈말만은 아닌 듯도 싶다.

구례장 ⓒ유성문(2007)


구례장터에는 대장간이 두 군데나 있다. 한쪽 집은 다리가 불편한 노장이고, 다른 한쪽은 기술이 부족한 소장이다. 순천덕암철공소를 운영하는 박경종 씨는 이제 갓 서른셋이다. 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갑작스레 대장간을 떠맡았는데, 일찍부터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워 벌써 경력이 10여 년을 넘었지만, 아직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진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메질하는 아버지 곁에서 집게잡이만 하여도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절로 신이 났던가. 그래도 이 순하고 바른 청년은 벌이도 시원찮은 대장간을 굳세게 이어갈 작정이다. 아직 자기를 필요로 하는 손 불편한 사람이나, 혹여 짝배기용 낫이라도 주문할 이가 남아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순정함이 벌겋게 달궈진 쇠를 다스린다.

구례장 ⓒ유성문(2007)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가

양점덕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뻥튀기기계를 돌린다. 봉동에 사는 할아버지는 줄곧 농사를 지어오다가 몇 년 전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뻥튀기기계를 사들였다. 아무리 뻥튀기가 그리 어려운 기술이 필요 없는 일일지라도, 노년에 기계를 돌리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만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한 달 4만5천 원에 불과한 장옥 자릿세조차 제때 채우지 못할 만큼 벌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장날이면 어김없이 할머니의 손을 끌다시피 장터로 나갔고, 여전히 할머니 앞에서 큰소리를 뻥뻥 쳐댔다. ‘그렇게 큰소리칠 힘으로 뻥튀기나 잘할 일이지…’, 할머니는 들리지 않게 흉을 본다.

구례장 ⓒ유성문(2007)

봄은 왔어도, 장날 같지 않은 구례장터에서 가장 대박을 터트린 것은 꽃 파는 아낙네다. 장난감 같은 화분용 꽃들을 늘여놓은 좌판 앞은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꽃대궐인 지리산 아랫동네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관상용 꽃을 돈 주고 사간다. 지천으로 꽃을 두고도, 아직 꽃을 피울 빈자리가 남아있음인가. 외래종 자잘한 꽃들을 감싸고 있는 비닐포장의 꽃무늬 프린트가 제 품안의 꽃들을 닮아있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닮아있기도 하다. ‘장사가 잘 되서 좋겠다’고 말을 건네자, 아낙은 애써 말을 돌린다.

“제가 요 읍내에 살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많지라. 손님 대부분이 저와 같이 신학기를 맞은 아이들의 학부모이기도 하고요.”

살짝 아닌 척해보지만, 검게 그을린 그녀의 얼굴에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웃음기가 숨어있다. 그 얼굴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웃음이 그립도록 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회니 시골이니를 가리지 않고 모두들 세상 살기가 곤고하다고 한다. 도회야 스스로 자처한 일이기도 하지만, 시골사람들에게 그 곤고함은 이미 오랜 내력이었다. 그들의 주름살 위로 떨어지는 햇살은 이내 바스라져 흙이 된다. 그 흙을 먹고 온갖 숨붙이들이 살아가고, 그 숨붙이들 사이로 다시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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