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너는 무엇을 위하여 여기에 왔던가

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2.11.09 03:55 | 최종 수정 2022.11.09 04:06 의견 0

새벽산책을 가는데 고라니 한 마리 쓰러져 있었다. 보리가 쪼르르 달려가 앞에 섰다. 자기가 안 그랬다며.

천화란 귀천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어릴 적 나는 두 노승의 죽음을 보았다. 한 노승은 죽을 때가 되자, 당신의 방을 나와 기어오를 수 있는 곳까지 산으로 높이 기어 올라갔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노승을 찾았고, 어른 스님들은 내가 노승을 찾아도 쓸쓸히 외면할 뿐 아무도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또 한 노승은 열반당에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걸망에 편지와 함께 비닐에 둘둘 쌓인 돈뭉치를 남긴 노승이 있었다. 지금 돈으로 따지면 근 3백만 원 정도가 들어 있었다. ‘당신이 입었던 오래된 옷’을 화장터에 처리해주는 후배에게 전한다는, 뒷처리를 부탁한다는. 그랬다. 그때, 이게 아닌데…, 이건 아닌데….

어떤 시인이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한 철 꽃구경--이라 했던가.

고라니의 시신을 보는 순간, 장사익의 노래도 떠올랐다. 김형용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꽃구경>이라는 노래였다.

어머니 꽃구경가유…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버리더니 한웅큼씩 한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지금 뭐하신대유 아 솔잎을 뿌려서 뭐하신대유 아들아 아들아 내 아… -김형용 시인의 <꽃구경> 중에서

삶이 힘들었던가. 내가 벌써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나. 고라니의 모습이 자꾸만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피했다. 그러다 다시 가보았다. 내가 살았던 이 세계가 꽃동산이었던가.

이번에도 역시 보리가 먼저 쪼르르 달려가는 것이었다.

괴로우셨나요? 무엇하러 오셨어요? 이젠 제 몸뚱아리가 시원해요. 고라니가 내게 말하는 거 같았다. 눈알은 누군가가 파먹고 눈물이 마른 고라니의 눈을 보다 눈을 감겨주려 해도 경직이 되어 감겨지지 않는 거였다. 세상이 온통 단풍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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