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상좌의 초대로 어제는 파주엘 갔다 왔다. 오고 가는 길이 착잡했다. 절집이나 속가나 생육과 번성은 언제나 문제였다. 순간 오래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오래 전, 둘째 상좌가 미학과에 간다 했을 때, 나는 대놓고 미친놈 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니 미친놈의 시조는 나부터였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내가 문창과엘 간다니까, 사형들은 미친놈이라고 했다. ㄷ대나 S대에 가면 장학생이 될 수 있는 데다 ㄷ대는 장학생 제도가 잘 되어 있었고 백상원도 있었으며, S대는 까까들 학교라 한 학기 등록금이 백여만 원밖에 되지 않기에 역시 기숙사가 있어 숙식에 부담이 없었다(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런데도 일반대에 간다니까 시선이 곱지 않았다.
나는 애당초 ㅈ종단을 나왔지만 상좌들은 사형사제들의 상좌로 해서 계를 받게 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입학금과 첫 등록금만 만들어 달라는 거였다. 그쯤 나는 불사를 하고 있어서 난감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먹고 죽을 돈도 없었다. 하여 모아 놓고 회의를 했다.
그래도 나도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 내가 그동안 노후를 생각해서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냈다. 그런데 그쯤 마침 통지서가 하나 절간으로 날아왔는데 일시불로 받을 거냐, 아님 연금으로 받을 거냐고 묻는 거였다. 그거 찾으면 등록금이고 뭐고 다 해결되었다.
두 번째, 둘째가 학자금 융자를 신청하는 거다. 그럼 내가 그 금액을 살면서 갚아주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입학금과 등록금만 해결해주면 서울 사숙네 절에서 새벽예불, 저녁예불 해주는 부전으로 살면 숙식은 해결될 거였다.
회의를 하는 동안, 첫째 상좌는 ‘첩첩산중에서 스님 혼자 사시기도 빠듯한데 저 새끼는?’하며 못마땅한 둘째 놈 눈에 연신 레이저를 쏘았다.
“그런데 넌 왜 미학을 하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째 놈이 둘째 놈에게 대놓고 힐난하듯 시빗조로 물었다.
“제 생(生)이 미메시스(mimesis), 생의 기본 원리로서의 모방이나 재현. 미메시스가 아닌 창조, 창작자로 살고 싶어서요.”
“......활불로 살고 싶다?”
내가 말했다.
“까까과로 가고 새꺄, 니가 부전공으로 철학을 할 수 있잖아.”
그러나 첫째 놈이 끼어들었다.
“그건 사형님의 생각이고요. 제 인생은 제 꺼 거든요.”
둘째 놈이 항변했다.
하여, ‘알았어, 알았어’ 하고 다투는 놈들에게 ‘야, 야’ 해서 내가 정리를 했다. 그런데 다음 날 49재가 들어왔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둘째 놈이 그 영가의 사십구재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모시던지, 두 주먹을 불끈 쥐던, 그리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그 얼굴이.
도량과 법당을 쓸고 닦고, 재물을 살 때 청과물 도매상에 가서 좋은 과일들만 고르던 그 신나해 하던 모습.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때, 그런데 나는 기실 미메시스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둘째 놈의 차 뒷좌석에 앉아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이란 곳으로 향하며 옛날 그 이야기를 꺼내기에 나는 끙 신음을 삼켰다. 또 아트밸리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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