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2.12.27 13:48 | 최종 수정 2022.12.2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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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제 속에서 헤매고 있어요. 저의 시간들 상황들 내가 보는 모든 것들 내가 접하는 모든 것들은 다 망가져요. 장난감 인형도 아닌데. 늘 존재로 무겁고, 어둡고 비구름이 몰려와요. 밤은 항상 더 어둡고, 더 공허하고, 더 단순해지고요.
외국에 나가 이십여 년 살다 온 보살이 왔다. 기도하느라 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끝내고 보니 반갑게 눈인사하며 합장한다.
어찌 살았어?
비참하게 살았어요(남편 죽고 아들 죽고 딸 하나 살았단다).
다들 그렇게 살아.
내 말에 보살이 입을 꾹 다물다 다시 입을 연다.
부탁이 있어요.
뭐?
사흘만 제게 주세요.
그래서 어쩌라고? 남은 생 책임지라고?
아뇨, 전 스님을 감당 못 할 거 같아요.
그럼?
이박삼일만 저랑 살아줘요.
으음..... 보살이 올해 몇이더라?
....육십다섯요.
미쳤냐, 내가? 송장 치를 일 있냐?
내 말에 법당에서 사진을 찍어주던 보살의 딸이 킥킥거리다가 '울 엄마 스님한테 뻰찌 맞았대요'하고 큰 소리로 떠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법당에서 한참이나 낄낄대고 웃었다.
그리하여, 고국으로 돌아온 유골들, 납골당으로의 이운을 집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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