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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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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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디까지 가보셨어요?
어디까지 해보셨어요?
살다보면 어찌해볼 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 밤인가 하면 낮이요, 낮인가 하면 밤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밤이 아니면 낮이라는 사실이었다.
간혹 낯인데도 더듬더듬 했지만 밤이나 낮이나 빛이 있었다는 거다. 무명, 무지 속에 그 빛을 찾아가는 동안 즐거웠다. 낭떠러지, 백척간두를 향하던 그 여정.
그 목표와 프로젝트는 뭐였는데? 그게 나의 내 삶의 모티프였다. 깨달음과 열반. 좋았다. 거창했고. 열심이었다. 그러나 목표와 프로젝트였을 뿐 거개는 삶에 힘썼다. 살다보니 목표와 프로젝트도 잊은 채.
보름에 한 번 읍(邑)내에 나갔다. 작은 도서실에서 책 다섯 권을 빌려 보는 게 큰 낙(樂)이었다. 책을 빌려 나오는데 젊은 한 청년이 물었다. 마트에서 물건 살 때 몇 번 보았던 청년의 눈은 깊었다.
끝까지 가보았어. 다 해봤어. 그런데 끝이 더 있고 더 해야 하더라고.
청년이 입을 앙다문 채 서 있었다. 임용고사에 국어과목, 내리 삼 년째 떨어졌단다. 작년 얘기다.
나도 그랬지. 내 삶에 대해 애매한 불만감과 불만족감이 없다면 그게 사는 거니? 후회 없게 최선을 다해. 지금은 가슴이 찢어질 거 같아도. 서울만 고집하지 말고 지방에 한 번 내봐. 나는 지금 만족해.
서가에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가 꽂혀 있었다. 교육, 교육학, 교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다시 볼까, 하고 뽑았다. 그리고 도서관을 나오는데 작년에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마트에서 밤새 알바하던, 내게 존재를 묻던 그 청년이 생각났다.
얼추 2차 실기평가, 면접을 볼 때인 거 같은데. 청년이 이번에는 붙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도서실을 나오며 다시 한번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다 봤다.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다섯 권의 책을 들고 서 있는데 구름 잔뜩 낀 흐린 하늘이 나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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