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찢어 버린 원 밀리언(one million), 일만 달러 personal check.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1.16 09:00 의견 0

불교에 미치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

향긔로은 님이시어. 님이여.

1.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아....., 사랑하는 나의님은 갓슴니다...... 날카로은 첫 키쓰의 追憶은 나의 運命의 指針을 돌너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그러나 내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이 그리 대단한 거구나! 하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참 오, 놀라워라! 하며 부처님의 가피에 합장배례하곤 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나에게는 일만 달러짜리 미국 수표가 있었다. 날짜, 돈 받는 사람, 금액 10,000달러. 한번 더 금액이라 적혀 있었고 원 밀리언(one million) 달러 라고 씌어 있었다. 찢어버렸지만.

나는 수표를 보며 씨익 웃고는 했다.

들여다보고 지인이 사업에 망했을 때, 음독하겠다, 했을 때도 누군가 가게를 차려보겠다고 도와 달라고 했을 때도 들여다 보곤했다. 그랬다. 서울에 있는 은행 앞까지 가기도 했었다. 은행 앞에서 미이라처럼 삐쩍 마른 얼굴을 찌푸리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뒤돌아서기는 했지만.

그 아이의 이름은 다솔이었다. 눈알이 빨갛게 되도록 울고 또 울던 목이 다 쉬었던 한 다솔.

그날, 나는 노스님에게 반하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다.

열네 살 때, 사시예불 준비를 할 때였다.

산신각 위 쯤에서 무언가 보았다.그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 또래의 여자였고 이쁘장하게 생긴, 나보다는 두어 살 어려보이는 예쁘장한 계집애였다. 아이는 올라가지 않으려 했고 여자는 눈을 흘겼다.

순간,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내내 고민했다. 예불이 시작되자 곧 노스님에게 말했다.

"가보자."

하여, 가보니 여자와 아이는 이미 반듯하게 누운 채 쓰러져 있었다. 산신각 뒤 무덤 하나가 있었는데 양지 바른 곳이었다. '내가 죽는다면 여기서 죽으면 되겠군. 죽기 딱 좋은 곳이네.' 산토끼처럼 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을 때 되뇌곤 했던 곳이었다.

"야야, 얼라는 니가 업어라.'

계집아이는 토한 듯 입가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 아이를 업고 뛰었는데 그 아이의 가슴에서 나는 부풀어 오르고 내리는 그 아이의 작은 젖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분이 참 묘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여자아이는 정신을 차렸다. 토해서 그런지 말짱했다. 나는 손수건으로 그 아이의 거품 문 입을 닦아 주었다. 그러나 그 아이, 다솔이의 엄마는 깨어나지 못했다.

병원측에서 여러가지 영수증을 내밀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영수증 처리가 되지 않으면 위세척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노스님에게도 돈이 없었다는 걸. 너나 없이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내게는 통장과 도장이 있었다.

"저한테 쫌 있어요."

시간은 자꾸 가고 있었다. 접수실 앞에서 곤혹스러워 하던 노스님이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그래도, 내가 통장과 도장을 내밀었는데도 부족한 모양이었다. 노스님이 어찌어찌 연락해서 다솔이 엄마는 수술실로 옮겨질 수 있었다.

깨어난 여자아이가 쫄쫄거리고 따라다니며 내 눈을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백 배 천 배로 갚을 게요."

어금니를 깨문 채 울먹이던 소녀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만리동에 있던 p중학교 2학년을 중퇴했던 내가 죽음, 자살을 생각하며 품었던 의문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갈 곳이 없어 중국집 배달의 기수로 들어가 8개월 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던 월급 통장이었다.

그랬다.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운 길이었다. 노스님은 깨달음과 열반을 행복이라 표현했다. 그리하여,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나는 한 푼 없는 개털이 되었다.,


2.

이 세상과 모든 우주만물은 오직 참 빛이시고 참 생명이시며 참 사랑이다.

"스니임?"

"응?"

"사문(沙門 )이 뭐예요?"

노스님이 그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나도 멈추었다. 노스님이 내 눈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왜 사문이 되고싶어?"

"예."

다시 걷는 스님을 따라 나도 걸음을 내딛었다. 아니오, 하려다 '죽을 때 죽더라도 죽을 때 죽는 줄 모르게 죽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 걸 눈으로 직접 본 나였다.

"사문이라, 집을 떠나 행복(니르바나)을 찾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지. 운수(雲水)라 할까. 야야? 어린 나그네. 그러니 니는 마 행복한 놈이다. 안그나?"

"....와예?"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자유롭잖아. 번뇌망상, 모든 갈등의 근원이 바로 그곳에 있다! 그기 바로 우리들의 욕망인기라."

"크으......예? ......예!"

"야야, 싸납쟁이. 팔딱이는 네가 나는 참 좋다. 팔딱이는 파도가 강한 고기를 만든다."

"......네?" "오늘 니는 잘 했다."

그랬다. 다른 아이들은 어쩐지 몰라도 절집에 들어선 나는 매일 아침 세시 반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강한 파도만이 강한 어부를 만든다, 말이다."

알아먹을 것도 같았고 알아먹지 못할 것도 같았다.

"그런데 야야, 얕은 물에는 큰 고기가 놀지 몬한다."

"......예?"

"물이 깊어야 큰 고기가 뛰어 놀 수 있다 아이나."

"그런가요? 시님 요. 그런데 니르바나(열반)가 뭔교?"

"유토피어다. 극락 아이나. 불을 끄는 거지. 불이 꺼지듯 번뇌의 불이 꺼지는 곳을 말한다. 늙음과 병듬, 죽음과 괴로움이 고요히 사라진 상태. 그기 행복 아이가?"

"행복요?"

3.

노스님과 내가 그날 그렇게 용을 썼는데도 그 여자는 죽었다. 그때 병원에 노스님과 아는 의사가 있어 병원비와 장례비를 대납해 주었다.

"야야, 천수 쳐라."

빈소도 없었고 화장터에서 그렇게 나는 천수경을 쳤고 아이의 어머니 장례를 치러 드렸다.

"아이는 어떻게 하죠?"

"입양해야지. 자네가. 자네는 자식이 읎잖여."

무대뽀이신 노스님 때문에 따라온 의사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의사 역시 나처럼 노스님의 법력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그렇게 노스님의 공덕으로 우리는 화장터를 나왔다.

의사의 검은 승용차에 올라타던 까만 눈동자의 예쁘장했던 소녀가 그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 똘망똘망한 여자아이를 마주 보았다. 눈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다솔이, 그 아이는 내게 살짝 다가와 어금니를 깨문 채 '꼭 갚을 게.' 라고 목이 쉰 말을 다시 던지고 갔다.

아마, 내 눈에서는 '나한텐 정말, 피 같은 돈이야. 나중에 엄마를 찾아갈. 돈이니 꼭 갚아.' 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요?"

나무에미타불, 나무애비타불, 하고 장엄염불로 장례 집전을 끝내고 암자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먹고 자고 싸러."

"......."

훅 숨을 들이키며 나는 노스님을 올려다보았다.

"보건소로 가자. 그런데 왜, 슬프나?"

"예. .....그런데 행복한 곳으로 간다며요?"

"응. 신병비관, 생활고에서 벗어나는기 그기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기 행복인기라. 그기 바로 수행인 거고.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 중에서 행복한 길로 가는 길이 가장 어려운 길이지. 그란데 우린 지금 보건소로 가는 길이 깨달음 열반의 길인 기라."

나는 입맛을 쩝 다셨다. 노스님은 연신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을 지껄여댔다.

점심도 먹지 못했고 암자는 멀었다. 읍내 장터를 지나는데 순간 몸이 기우뚱했다. 불안정한 걸음으로 노스님을 따라갔다. 노스님 역시 으, 하는 구겨진 감탄사와 함께 가끔 몸을 뒤틀곤 했다.

그런데도 노스님은 . “이 세상의 여러 가지 힘 중에서 행복의 힘이 가장 훌륭하다, 는 거였다. 또 논설을 까대는 데.

"수행이 뭐라고 하셨죠?"

너무 힘들어 나도 맞장구를 쳐 드렸다.

"사는 거. 길을 가는 거다. 세상이 온통 벽이라 카지만 그 벽을 넘으면 가고자 하기만 한다면 길은 사방 어디서나 몰려오고, 길은 또 사방 어디로나 뚫려 있는 벱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 깨달음 열반으로 가는 길. 우리가 선택하는 실존이랄까. 아마 너는 이 공덕으로 죽을 고비를 두 번은 넘길 수 있을 끼다."

노스님은 예언자처럼 뜬금없는 말을 해댔다. 실제로 노스님은 부적을 그려 팔기도 했고 사주팔자, 궁합도 보아주곤 했다.

"그럼 진리는 뭐예요?"

배고픔을 참으며 물었다.

"저 하늘과 땅,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거.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꽃이 피는 거. 너와 내고 늙고 병들고 죽는 거. 저 흘러가는 구름과 흘러가는 시냇물의 물소리가 진리지. 그건 그런데 세상이 좀 그렇지?"

"무슨 진리가 그따위에요....칫."

"왜, 진리가 엿 같아? 행복으로 가는 길이?"

"그래요.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하고 야만적이고 광기에 난리부르스 난폭하기만 한 걸요."

미워하는 것을 만나는 괴로움.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괴로움.

육체의 본능에 의한 괴로움으로 배고프기만 했다.

자연을 봐. 날 때 나고, 클 때 크고, 꽃필 때 꽃피고, 열매 맺을 때 열매 맺고, 그게 사는 기라. 아무 거리낌 없이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그야말로 자유롭게 살라고. 해방된 삶을 살아야지.

"자유요?"

노스님은 니놈은 햇님이 필요한 아이로구나. 무서울 정도의 뜨거운 열기와 힘을 가진 태양. 그런데 니는 달님이랑 놀았구나. 태양이 없는 달은 너무 추워. 지난 겨우내 그 달님이랑 있어서 추위를 타는 게여. 마치 태양은 없었다는 듯이. 그래 잘 왔어. 네가 너에게 태양을 주마. 아마 너는 그 태양이 너무 뜨거울 게야.

행복의 나라로 가자더니. 겨우 보건소, 하며 꿍얼댔다. 나는 벙 쩠다. 서운한 감정이 들었으나 내색하진 않았다.

"당분간은 너." "예." "

건강 외에는 더 이상 이 세상 아무 것도 관심 갖지 마. 관심이 없을 때 평화로운 거야."

"죽을 때 되면 죽는 거죠 뭐, 건강도 관심 갖는 거 아니에요?"

"일마야, 그럼 네놈이 몸하고 마음 없이 뭐로 살낀데?"

"......."

"어린 나그네. 어쨌든 인생을 잘 견뎌보라고."

그 말에 나는 찌르르한 통증이 지나갔다. 그저 단지 물끄러미 노스님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그때 당시 노스님은 내 유년기를 지탱하던 끈이었다.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어도 산 사람이 있다. 삶에 의미가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

내가 살아있다 카는 건,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살아있고 현존한다는 것'은 존재감이 있다는 것이다. 자아존중감이란, 존재감 속에서만이 나오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인식하느냐 못하느냐, 의 차이인 것이다. 오늘 본께로 네놈에게도 불성이 있드라. 잘 했다. 저 지나가는 개새끼에게도 불성이 있듯이.

보건소를 나왔고 희끗희끗 눈발이 휘날렸다. 그때 읍내에서 보살이 포목점을 하는 처사를 만났다. 점심을 굶은 탓에 얼핏 현기증이 일었다. 추위로 몸은 덜덜 떨리고.

"스님 공양은 하셨능교?"

"못 묵었다. 니놈이 공양을 올려야지."

노스님은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을 내뱉었다. 마치 '안 주면 가나 봐라, 안 주면 가나 봐라'하는 눈빛이었다. 나도 노스님을 닮아가 꽤나 뻔뻔해져 민망해하지도 쑥스러워 하지도 않았다.

하여 우리는 당당하게 마치 맡겨 놓은 듯이 중국집에 들어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얻어 먹었다. 노스님은 소주를 홀짝거렸다. 막걸리가 없어 소주를 드셔서 그런지 코가 빨개지고 얼굴에는 붉은 반점이 솟아 올랐다.

그때 처사를 보고 노스님이 다시 말했다. 우리는 둘 다 개털이었다.

"야야, 아무래도 처사가 시주를 좀 더 해야 쓰겠다."

노스님이 가래가 글글 끓는 소리로 외쳤다.

"....그러죠, 뭐. 무엇을 시주해 드릴까요?"

처사는 웃으며 내 모양새를 요모조모로 뜯어보는 눈치였다.

"저 헛똑똑이 놈 책 좀 사줘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은사스님은 오지 않으셨다. 내 걸망에는 어린 왕자와 갈매기의 꿈, 국어사전, 영한사전, 옥편이 전부였다.

노스님 기침소리만 더 잦아지고 쌀 한 말과 라면 한 박스, 그리고 국수 두 봉다리를 등에 메고 들고 노스님이 시틋하게 나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개털이 된 그리하여 나는 헌책방을 찾았고 중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 과목대로 책을 한 아름 안고 암자로 오를 수 있었다.

"약, 약은?"

얼마나 걸었을까, 책을 들고 오는 바람에 보건소에서 받은 결핵 약을 헌 책방에 두고 온 거였다.

"야야, 어여 가가 가져온나."

노스님은 길바닥에 책을 내려놓게 하고 그 책들을 깔고 앉아 담배를 척 꺼내 태워 무시더니.

"뭐하노 퍼뜩 안 가고?"

하고 노스님이 기가 막히다는 듯 가래끓는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칠 때 멀뚱히 섰던 나는 그때 왜 그리 세상이 비극적이라 여겼는지 하염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마구 서글픈 생각만 들고 세상이 그리도 막막하기만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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