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른 나비처럼…

그의 시세계에서 은유의 진화를 꿈꾸는 언어들이

독자의 와인잔 속에서 은은하게 시향(詩香)을 풍긴다.

- 김두안 시인 -

200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다가 2018년 제26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했던 강성남 시인이 데뷔 15년 만에 첫 시집 『당신과 듣는 와인춤』을 현대시세계 시인선 176번으로 출간하였다.

‘와인춤’이라는 생소한 시어의 연상과 상상 그리고 그 춤을 추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닌 ‘듣는’ 행위를 통해 다소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성남 시인의 첫 시집 『당신과 듣는 와인춤』은 특이하게도 ‘와인’을 책 제목에 넣고, 각 부를 와인의 종류/특징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와인의 종류가 복잡하고 다양하듯이, 시도 의도와 방식, 목적 등에 따라 다른 색깔을 드러낸다. 데뷔 15년 만에 첫 시집을 출간한 강성남 시인이 빚은 와인시 맛은 어떨까.

해녀의 숨비소리를 이미지화한 표제시 「당신과 듣는 와인춤」에서 ‘와인춤’은 “가장 깊은 음역의 시(詩)”를 쓰는 행위이면서 “그가 그녀(의) ‘파’ 건반을 지그시” 누르자 물속과 수면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묘사된다. 와인을 따르거나 마시는 행위는 해녀가 바닷속에서 유영하거나 수면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다시 ‘와인춤’을 추는 것과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것으로 이미지가 중첩된다.

1부 ‘스위트와인’의 계절은 봄, 색깔은 분홍이다. “원고지 같은 봄날/ 햇살들 마라톤대회”(「이메일」)를 열고, “버드나무는 분홍 원피스를 입”(「물의 뜰」)는다. “잠에서 막 깨어난 나비”(「은행나무 제본소」)가 날고, 뱃속에선 “금빛 나비 한 마리가 숨”(이하 「나를 수선한다」)을 쉬고 있다. 하지만 봄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 나비는 생명(「나를 수선한다」), 자아(「나비」), 희망(「희망으로 와요」), 사람(「한글학교 가는 길」), 진보(「구름도서관」) 등 존재와 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매개 역할을 한다. 즉 상처나 고통으로 좌절할 수 있는 존재에게 희망을 부여해 긍정으로 세계로 이끈다.

2부 ‘레드와인’의 계절은 여름이다. 인생으로 치면 20~30대가 아닐까. 여상을 졸업한 20대 초반 “남대문 시장통을 오가는 나”(「소문난 경북집」)와 “관수동 벚나무 대폿집”(「화가 K」)에서 어울린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학생들과의 추억, 첫 “아이를 안던 순간의 감개무량”(「모자보건센터 607호실」), 그리고 “논두렁 도서관과 사과밭 화실을 넘나들며” 빛깔이 다른 화법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 K의 꿈 등의 시기 말이다. 여름의 무더운 날씨에도 꽃과 열매를 맺어 결실의 가을이 온다는 희망이다.

3부 ‘로제와인’의 계절은 자연스럽게 가을이다. 시인의 태몽(「황구렁이」), 첫사랑의 두근거림(「왕관을 쓴 파랑새」), “너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그 고백”(「작약도」), “빨갱이에서 유공자로 인권”(「녹음(綠陰)」)이 회복된 노인, “횃불로 어둠을 밝히는 청년 전태일”(「희망으로 와요」), 뒤늦게 공부하는 노인들(「한글학교 가는 길」) 등을 다루고 있다.

4부 ‘화이트와인’의 계절은 당연히 눈[雪]의 계절 겨울이다. 헤르몬산을 통한 종교적 성스러움(「구름도서관」), 가야 할 반대편 플랫폼에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단상(「반대편에서 기다리다」), 옷걸이에 좌우되는 사람의 품격(「옷걸이」), “봄볕 숨어드는 특수학습”(「오후의 마루방」)의 풍경, 노을 진 전철 안 남녀의 정겨운 대화(「빨간 모자 쓴 강(江)」) 등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 같은 세상과 평등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와인의 종류가 복잡하고 다양하듯이, 시도 의도와 방식, 목적 등에 따라 다른 색깔을 드러낸다. “수만 개의 금맥”을 캐듯, 다양한 시를 창작할 수 있다. 색깔과 당분, 탄산가스에 의해 와인을 분류하듯이, 시의 빛깔과 맛의 특성에 따라 이번 시집을 구성한 것은 아닐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 등을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와인은 병에 담긴 시(詩)”라고 했다. 이제 시인이 정성껏 빚어 내놓은 와인/시의 맛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김두안 시인은 “강성남 시인의 첫 시집 『당신과 듣는 와인춤』은 은유의 맛이 강하다. 시편의 비정상적 사건들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밀봉되어 있었다. 그는 자아에서 복사된 고통의 생생한 의문들에게 언젠가 ‘다시 따뜻해지리라는 예감이 든다’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충분히 숙성된 진실의 비밀을 이제 그가 하나하나 떨리는 감각으로 해체하고 있다. 슬픔을 담은 유리병보다 깊고 또 더 좁은 목구멍 속에서 무의식에 가까운 감정들이 이 세상 밖으로 콸콸 흘러나온다. 시인의 내면에서 황홀하게 물든 문장의 빛깔은 매우 부드럽고 은밀하며 현기증을 유발한다. 「구름도서관」에서 ‘시집 한 페이지를 열자’ 날아오른 나비처럼… 그의 시세계에서 은유의 진화를 꿈꾸는 언어들이 독자의 와인잔 속에서 은은하게 시향(詩香)을 풍긴다”며 첫 시집의 추천사를 써줬다.



시인 강성남은

200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고, 2018년 제26회 전태일문학상 「방아쇠수지증후군」 외 2편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우리 독서지도사로 공부방을 운영하였고, 고려대국제어학원(인천 논현캠퍼스) 국어논술 강사로 재직하였다. 시와 비평전문지 『포엠피플』 편집위원, 전태일문학상 시분과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경기 민예총 김포지부 문학분과 회원,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 시분과 이사,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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