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기억】 저 푸르고 우뚝한 것들은

_소쇄원과 관방제

유성문 주간 승인 2021.05.26 18:59 | 최종 수정 2021.06.11 00:47 의견 0

실락원(失樂園)의 정원사

불우한 자들이 낙원을 만들고, 모든 낙원은 지옥 속의 낙원이다. -김훈 <자전거여행·1> 중에서

빛고을 광주에서 무등의 북쪽 산그늘을 따라가다 887번 지방도로를 올라타면 머지않아 소쇄원의 들머리길이 나타난다. 예서부터 ‘죽향(竹鄕)’ 담양이며, 현실에서 패퇴했거나 소외당한 처사들이 배회하던 ‘정자문화’의 시작이다. 누구의 표현처럼 ‘소쇄소쇄’하는 대숲을 슬슬 걸어 올라가다 보면, 어둑사니한 숲길이 끝날 즈음 대봉대가 보이고, 마침내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 ; 소쇄처사 양공의 조촐한 집)’가 펼쳐진다.

조선 중종 때 사람인 양산보는 스승이었던 조광조가 강력한 개혁정치를 펼치다 훈구파의 반격에 몰려 화순 능주로 유배당하자 뒤따라 낙향한다. 얼마 가지 않아 조광조는 끝내 사약을 받아 죽었고, 그때부터 양산보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자연 속에 묻혀 지낸다.

소쇄원 ⓒ유성문(2004)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와는 달리 자연은 얼마나 고분고분한가. 현실에서 패배한 정신은 자연에서 슬며시 이상의 지도를 그려나간다. 하지만 패배의 충격에서 쉬 벗어나지 못하는 은둔자는 자연의 설계와 경영에서도 현실세계의 꿈과 이상을 채 구현해내지 못한다. 그저 관조하거나, 듣거나, 거닐거나, 탄식하면서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고 남은 울분의 찌꺼기들을 씻어내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조성된 소쇄원은 비슷비슷한 처지의 인사들을 불러 모으면서 ‘지옥 속의 낙원’으로 자리 잡는다. 고경명, 김인후, 송순, 정철, 기대승, 송시열 같은 당대의 문인, 선비들은 제월당, 광풍각, 매대, 오곡문 같은 소쇄원의 이곳저곳을 섭렵하면서 이른바 ‘계정풍류(溪亭風流)’의 영탄조 사설들을 늘어놓는다.

면앙정의 대나무 ⓒ유성문(2004)

그러나 정작 이 별서정원의 원주인은 그 어떤 감흥이나 자찬도 남겨놓지 않았다. 그것이 현실의 낙원을 잃어버린 자의 자괴 섞인 침묵이었을까. 다만, 구석구석 자신의 손길과 마음이 스민 정원에 대한 애정만은 어쩌지 못한 듯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고, 하나라도 상함이 없게 하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도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한국식 원림의 모범이라는 소쇄원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길을 잡으면 식영정이니 명옥헌이니 송강정이니 면앙정이니 하는 담양의 정자문화를 대표한다는 누정들이 줄기차게 이어지지만 지금은 다만 빈 누각과 이름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니, 그다지 커다란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광주호가 생기기 전 자미탄(창계천의 옛 이름) 가에 줄지어 서서 한여름이 무색하게 붉은 꽃을 피웠다는 백일홍 나무의 꽃그늘이나, 담양의 대숲 사이를 빠져나가는 성기고 서늘한 바람을 그리워할 뿐이었다.

관방제에서 나무의 영혼을 만나다

제 몸 속에서 햇빛과 물과 공기를 비벼서 스스로를 부양하는 저 푸르고 우뚝한 것들은 얼마나 복 받은 존재들인가. -김훈 <자전거여행·2> 중에서

나무는 물에서 영혼을 얻는다. 그 영혼은 바람으로써 노래한다. 영산강의 시원인 가마골 같은 수원들과 물줄기들을 그러안은 담양은, 그래서 당연히 나무들의 고향이 된다. 기실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초본과 식물인 대는 어쩔 수 없이 풀일 뿐이지만, 담양에서는 풀조차 나무가 된다. 그 넉넉한 햇볕 사이에서 나무는 가지를 뻗고 잎을 흔들어 영혼을 노래한다. 그래서 ‘담양’이다.

관방제 ⓒ유성문(2004)

담양에서는 심지어 저잣거리조차 늠름한 숲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담양읍을 가로지르는 담양천가에 관방제림이 있다. 300년이 넘었다는 이 해묵은 숲은 비록 수해를 막기 위해 관(官)에서 둑을 쌓고 조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만, 이 숲을 이룬 것은 사람, 더구나 관은 아니다. 이 역시 물이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리고 숲은 이제 무심히 물의 범람을 막고 서 있다.

2Km가 넘는 둑방길 위로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엄나무 등이 늘어선 관방제를 거닐면 어김없이 나무의 다채로운 영혼을 만난다. 신비롭게도 이곳의 나무들은 모두 오래되었으나, 그 영혼의 울림만은 항상 새롭다. 나무 그늘 밑에 쉬어가는 노파들조차 세월의 흐름을 잊고 다만 싱그럽게 느껴질 뿐이다.

대나무골테마공원 ⓒ유성문(2004)

관방제 아래의 넓은 공터는 그 유명한 죽물시장이 열리던 곳이다. 일제 때에는 개성 다음으로 세금이 많이 걷힐 정도로 번성했다는 죽물시장은 이제는 플라스틱이나 싸구려 중국산에 밀려 영판 쇠락해버렸다. 세계에서 유일한 대나무박물관이라는 담양문화원의 한국대나무박물관조차도 그 허우대와는 관계없이 찾는 이가 별로 없어 항상 쓸쓸함 속에 애잔함만을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편의성이 높다 하더라도 어찌 플라스틱 따위가 대나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비록 가공되었다고는 하나 대나무 속에는 아직도 나무의 영혼이 남아 있다. 그 속에 담겨 있던 물과 바람과 빛들은 여전히 영혼으로써 사람들과 교감한다. 오죽하면 한여름 밤 서늘한 잠자리를 함께 해주던 죽부인 같은 경우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쓰는 것을 금하기까지 했겠는가. 자연으로부터 생활의 도구를 취하고, 손때 묻은 도구를 생활의 동반으로 여겼던 선인들의 시대는 스러지고, 오로지 물질로서 생활의 수단을 취하기에 급급한 시대에 관방제 아래의 빈 장터는 덧없이 넓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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