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보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이소

혜범 작가/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3.01.10 09:00 | 최종 수정 2023.01.10 09:56 의견 0

엄마, 밥줘.

손 씻고 들어와야지.

그처럼

허공을 떠돌다보니

돌아갈 집이 없었다.

엄마도

집도 없는 놈이라고

꿈도 없을까. 집도 없이

오십 년

걷다걷다 되돌아 바라보니

온 곳이 다 내 집인 걸

갈 곳이 다 내 집인 걸

사진 | 유성문 주간

도반이 죽어 가루 만들고 울진바다에 뿌려주고 오는 길, 서울 올라가는 차에 낑겨 타 문막휴게소에서 내려달라 했다. 걸어걸어 읍내 순댓국밥집엘 갔더니 ‘쐐주도요?’한다. ‘반 병짜리 없수?’하니 ‘한 잔을 마시셔도 반 병을 마시셔도 한 병 값을 내시면서.....’ 앞에 전대를 찬 노보살이 흰소리를 한다.

순대속 같은 세상. 옛날에는 많이 먹어야 불사를 한다고 간이며 폐며 쓸개도 얹어주었는데, 곱빼기를 먹고도 쩝쩝거렸는데, 요즘은 파는 양의 삼분의 일만 알아서 준다. 쐐주도 한 병은 해치웠는데, 요즘은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적게 먹으면 배가 고프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들러 한 잔, 더 먹으면 석 잔 먹고 뚜껑을 닫는다. 의사가 커피 담배 술은 극약이라 했거늘. 엄마 말을 그렇게 안 듣더니 부처님 말씀도 그렇게 안 듣고 살았는데. 하물며 의사 따위의 말 정도야.

도반은 죽어 바다가 되었고, 나는 살아 그렇게 궁상떨고 앉아 국밥집에 앉아 국밥에 소주 석 잔, 얼근해서 절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아무도 없는 버스정거장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다 도반이 좋아하던 정덕수 시인의 시를 울음과 함께 흥얼거렸는데, 그만 소리 내어 부르고 말았는데.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疊疊山中)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하는데 지나가던 차가 멈추고 창문을 열고 바라본다. 한 차도 아니고 두 차가 그런다. 그래서 후렴구를 한 번 더 불러제끼는데 노래가 끝나자 운전하던 이가 차에서 내려와 합장배례를 하고 박수를 치더니 ‘어디 계시냐?’ 묻는다. ‘나 여기 있다’ 대답하니 웃는다. 하여 가던 길 어여 가라고 손짓하여 보냈다. 걸망을 추스러 매고 일어섰다. 멀리 암자로 올라가는 버스가 오고 있었다. 하여튼 봄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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