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2일, 체코계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에서 사망했다고 유럽 매체들이 전했다. 스탈린의 전체주의에는 반대한 공산당원 쿤데라는 체코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활동가로, 1973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작품은 프랑스어나 체코어로 발표했다. 향년 94세.
쿤데라는 1929년 4월 1일 브르노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루드비크 쿤데라는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쿤데라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배운 피아노와 음악학은 이후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1979년 발표한 장편 <웃음과 망각의 책>이 한 예이다.
1981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 인터뷰할 때는 “Art and literature lost their value when they become propaganda, whether communist or anti-communist. - 예술과 문학은 공산주의든 반공주의든 프로파간다(선전)가 될 때 그 가치를 잃는다.”고 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그랑프리, 프란츠 카프카 문학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었으나 수상하지 못하고 타계했다.
스탈린이 지배한 공산주의 하의 체코에서 스탈린의 정적인 트로츠키를 찬양하는 엽서 한 장으로 15년간 광산으로 유배당하는 해학을 그린 <The Joke(농담, 1967)>가 첫 소설이다. “Optimism is the opium of the people! A healthy atmosphere stinks of stupidity! Long live Trotsky! -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강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냄새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쿤데라는 20세기 최고의 소설가인 조지 오웰이나 마거릿 애트우드, 존 버거, 필립 로스 등과 같이 오래도록 기억될 소설가이다.
◆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1984)>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니체의 ‘The eternal return(영원한 회귀)’이라는 주제로 철학적 담론이 많다. 마치 음과 양, 필연과 우연. 적극과 소극의 대비처럼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한 비교가 많이 나온다. 등장인물은 4명이다. 외과의사인 토마시와 그의 아내인 사진작가 테레자, 토마시의 애인인 화가 사비나와, 나중에 사비나가 반해 가벼움으로 불륜을 저지르는 유망한 교수 프란츠이다. 소련의 체코 침입 후에 그들은 무거운 현실정치를 회피하고 가벼움을 선택하거나, 가벼움에서 다시 무거움을 선택하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The idea of eternal return is a mysterious one, and Nietzsche has often perplexed ther philosophers with it: to think that everything recurs as we once experienced it, and that the recurrence itself recurs ad infinitum! What does this mad myth signify? --P.3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다른 철학자들을 종종 곤란하게 했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반복되고, 이 반복이 그대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해보라. 이 정신 나간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Parmenides responded lightness is positive, weight negative. Was he correct or not? That is the question. The only certainty is: the lightness/weight opposition is the most mysterious, most ambiguous of all. --P.6
파르메니데스는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이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신비롭고 가장 애매하다.
Love does not make itself felt in the desire for copulation(a desire that extends to an infinite number of women) but in the desire for shared sleep(a desire limited to one woman). --P.15
사랑은 성교의 욕망(무수히 많은 여자로 늘리고 싶은 욕망)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자고 싶은 욕망(한 여자에게만 제한하고 싶은 욕망)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A person who longs to leave the place where he lives is an unhappy person. --P.27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려고 갈망하는 자는 불행한 사람이다.
We believe that the greatness of man stems from the fact that he bears his fate as Atlas bore the heavens on his shoulders. Beethoven's hero is a lifter of metaphysical weights. --P.33
인간이 위대한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이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베토벤의 영웅은 형이상학적인 무게를 들어올리는 역도 선수이다.
We all reject out of hand the idea that the love of our life may be something light or weightless; we presume our love is what must be, that without it our life would no longer be the same. --P.35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는 생각을 즉시 거부한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상상한다.
Tereza would listen and believe that being a mother was the highest value in life and that being a mother was a great sacrifice. If a mother was Sacrifice personified, then a daughter was Guilt, with no possibility of redress. --P.44
테레자는 엄마가 되는 것은 삶의 최고가치가 있고 가장 큰 희생이라고 듣고 믿었다. 엄마가 희생 그 자체라면 딸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책감이다.
The individual composes his life according to the laws of beauty even in times of greatest distress. --P.52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시간에서도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Dreaming is not merely an act of communication( or coded communications, if you like); it is also an aesthetic activity, a game of the imagination, a game that is a value in itself. --P.59
꿈은 소통행위(암호화되긴 했지만)일 뿐 아니라 미학적 활동이자 상상력의 유희이며, 이 유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이다.
Being in a foreign country means walking a tightrope high above the ground without the net afforded a person by the country where he has his family, colleagues, and friends, and where he can easily say what he has to say in a language he has known from childhood. --P.75
외국에 사는 사람은 가족, 동료, 친구들이 있고 어려서부터 알게 된 언어로 말하는 것을 쉽게 이해하는 조국에서 제공하는 안전망이 없이 지상 위의 밧줄을 걷는 사람이다.
While people are fairly young and the musical composition of their lives is still in its opening bars, they can go about writing it together and exchange motif( the way Tomas and Sabinas exchanged the motif of the bowler hat), but they meet when they are older, like Franz and Sabina, their musical compositions are more or less complete, and every motif, every object, every word means something different to each of them. --P.89
젊은 시절에 삶의 악보는 도입부에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서로 모티브를 교환할 수 있지만(토마시와 사비나가 중절모를 서로 교환했듯이) 보다 나이가 들어 만나면 프란츠와 사비나처럼 그들의 악보는 다소간 완성되어 모든 모티브, 주제, 단어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
Religion was persecuted by the regime, and most people gave the church a wide berth. The only people in the pews were old men and old women, because they did not fear the regime. They feared only death. --P.110
종교는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박해를 받았고, 대부분 사람들은 교회를 멀리했다. 신도석에 앉아 있는 유일한 사람은 늙은 노인뿐이었는데, 그들은 정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만을 두려워했다.
Because love means renouncing strength. --P.112
사랑은 힘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What is flirtation? One might say that is behavior leading another to believe that sexual intimacy is possible, while preventing that possibility from becoming a certainty. In other words, flirting is a promise of sexual intercourse without a guarantee. --P.142
애교란 무엇인가? 그 가능성을 확실히 할 수 없지만, 다른 자로 하여금 성적 긴밀성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이다. 달리 말하면 성교가 보장되지 않는 약속이다.
People usually escape from their troubles into the future; they draw an imaginary lines across the path of time, a line beyond which their current troubles will cease to exist. --P.165
사람들은 고통을 벗어나려고 미래로 도망친다. 그들은 시간의 축 위에 선이 하나 있고, 그 너머에는 현재의 고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한다.
Love begins with a metaphor. Which is to say, love begins at the point when a woman enters her first word into our poetic memory. --P.209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첫 말로 우리의 시적 기억에 들어오는 순간에 사랑은 시작된다.
The novel is not the author's confession; it is an investigation of human life in the trap the world has become. --P.221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Human life occurs only once, and the reason we cannot determine which of our decisions are good and which bad is that in a given situation we can make only one decision; we are not granted a second, third, or fourth life in which to compare various decisions. --P.222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번 뿐이며, 어떤 결정이 옳고 나쁜지를 결정할 수 없는 이유는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보장되지 않는다.
History is as light as individual human life, unbearable light, light as a feather, as dust swirling into the air, as whatever will no longer exist tomorrow. --P.223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더 이상 존재하지 것처럼 가벼운 것이다.
Love is the longing for the half of ourselves we have lost. --P.239
사랑이란 우리 자신이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욕망이다.
If rejection and privilege are one and the same, if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he sublime and the paltry, if the Son of God can undergo judgement for shit, then human existence loses its dimensions and becomes unbearably light. --P.244
거부와 특권이 더도 덜도 아닌 같은 것이라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사이의 차이점은 없어질 터이고, 신의 아들이 똥 때문에 심판받는다면 인간 존재는 그 의미를 잃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In the realm of totalitarian kitsch, all answers are given in advance and preclude any questions. It follows, then, that the true opponent of totalitarian kitsch is the person who asks questions. --P.254
전체주의적인 키치의 영역에서 모든 답은 미리 주어졌고, 모든 질문은 배제된다. 따라서 전체주의의 키치의 진정한 적대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She wanted to die under the sign of lightness. She would be lighter than air. As Parmenides would put it, the negative would change into the positive. --P.275
그녀는 가벼움의 분위기 속에서 죽고 싶었다. 그 가벼움은 공기보다 가벼울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른다면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The happiness meant we are together. The sadness was form, the happiness content. Happiness filled the space of sadness. --P.314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 <The Art of Novel(소설의 기술, 1986)>
철학적이고 음악적인 소설을 쓴 쿤데라가 소설에 대한 생각을 담은 내용으로, 소설은 가상인물을 통해 실존에 대해 이야기하며 상상력을 펼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Need I stress that I intend no theoretical statement at all, and that the entire book is simply a practitioner's confession?. Every novelist's work contains an implicit vision of the history of the novel, an idea of what the novel is; I have tried to express here the idea of the novel that is inherent in my own novels. --P.iii
나는 이론적 언급을 하려는 의도는 없으며, 이 책 전부는 오로지 한 실무자의 고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모든 소설가의 작품은 소설의 역사에 대한 함축적인 비전,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내가 여기서 표현하려는 소설에 대한 생각은 내 소설들에 내재되어 있다.
With Balzac, it discovers man's rootness in history; with Flaubert, it explores the terra previously of the everyday with Tolstoy, it focuses on the intrusion of the irrational in human behavior and decisions. --P.5
발자크와 더불어서는 역사에 뿌리내리는 인간을 발견한다. 플로베르와 함께 소설은 그때까지 미지의 세계였던 일상의 지평을 탐사한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의 결정과 행위에 개입하는 비합리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It probes time: the elusive past with Proust, the elusive present with Joyce. with Thomas Mann, it examines the role of the myths from the remote past that control our present actions. --P.5
프루스트와 더불어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순간을, 제임스 조이스와는 붙잡을 수 없는 현재의 시간을 탐색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과 더불어서는 우리 발걸음을 원격조정하는 신화의 역할을 묻는다.
A novel that does not discover a hitherto unknown segment of existence is immoral. Knowledge is the novel's only morality. --P.6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존재의 부분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 소설은 부도덕한 소설이다. 지식이야말로 소설의 유일한 모럴이다.
The novel has accompanied man uninterruptedly and faithfully since the beginning of the Modern Era. --P.6
소설은 근대의 시초부터 중단 없이 충실하게 인간을 따라다닌다.
A novel examines not reality but existence. And existence is not what has occurred, existence that man can becomes, everything he's capable of. Novelists draw up the map of existence by discovering this or that human possibility. --P.42
소설은 실제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존이란 실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인간의 가능성의 영역이다. 인간이 될 수 있는 모든 것,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소설가들은 인간의 이러저러한 가능성을 찾아내 실존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The novelist destroys the house of his life and uses its stones to build the house of his novel. A novelist's biographers thus undo what a novelist has done, and redo what he undid. --P.145
소설가는 자신의 인생의 집을 헐어 그 벽돌로 자기 소설의 집을 짓는 사람이다. 소설가의 전기 작가는 소설가가 이룬 것을 허물고, 허문 것을 다시 짓는 일이다.
The novel's wisdom is different from that of philosophy. The novel is born not of the theoretical spirit but of the spirit of humor. --P.160
소설가의 지혜는 철학의 지혜와 다르다. 소설은 논리적 정신이 아니라 유머의 정신에서 태어난다.
Like Penelope, it undoes each night the tapestry that the theologians, philosophers, and learned man have woven the day before. --P.160
페넬로페처럼 소설은 신학자, 철학자, 학자들이 전날에 짜놓은 화려한 융단을 매일 저녁에 해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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