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one million personal check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01.02 09:00 의견 0

"스님, 왜 죽었을까요?"

"사고팔고의 그 고통과 괴로움 때문이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죽음을 선택했겠냐?.“

"......고통과 괴로움은 왜 생겨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란다."

노스님은 절깐에 다다르자 마자 낫을 가지고 와 나뭇가지를 쳤다. 그 자른 나뭇가지들을 칡넝굴로 잇더니 산신각 뒤로 올라가는 등산로, 또 산을 올라가 산에서 내려오는 하산로 위 아래를 모두 폐쇄해 버렸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산신각 뒷길 말고도 요사채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따로 있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미워하는 것을 만나는 건 괴롭다,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도 괴롭다.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해도 괴롭다. 육신이 완전하지 않음도 고통스럽다.

어리석음에 지배되는 사람은 잘못된 견해가 일어난다.

잘못된 견해에서 잘못된 생각이,

잘못된 생각에서 잘못된 말이,

잘못된 말에서 잘못된 행동이,

잘못된 행동에서 잘못된 생활수단이,

잘못된 생활수단에서 잘못된 노력이,

잘못된 노력에서 잘못된 마음챙김이,

잘못된 마음챙김에서 잘못된 집중이 일어난다.

나는 일기장에 그렇게 썼다.

"늙음과 병듬, 죽음과 괴로움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야."

"......"

"산다는 게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은 줄 모르는 어리석음이지. ......야야."

"......예?"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어라."

"예. 근데 이제 다솔이는 어떻게 살아요?"

"가는 본께로 니 보다 더 잘 살 아이더라."

".....왜요?"

"지 어매의 손지갑을 꼭 쥐고 있더라."


비참하고 참담했던 건 노스님 뿐만이 아니었다. 산책로를 막는 일을 돕던 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기침을 콜록콜록 거렸다.

다솔이 엄마는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다솔이 엄마가 다솔이에게 먹인 약은 수면제 한 알과 영양제들이더라고 의사가 말했었다. 노스님은 병원에 갈 때 검은 비닐봉지에 다솔이와 다솔이 엄마가 음독했던 약병을 수거해 갔던 거였다.

"너도 마찮가지다. 니놈이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고 했지?"

".....예."

"니는 할 수 있을 끼다. 모든 건 다 마음이 만들어 낸다. 마음을 다듬고 간절히 노력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

“그래도 자살은 비겁한 거다.”

“.....예?”

“아니다.”

전에도 산신각 뒤 무덤가에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는 거였다.

침통함과 적막 속에 입을 굳게 다문 노스님의 표정은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었다.

밥맛도 없었다. 그날 저녁으로 나는 감기로 코를 훌쩍거리며 라면 하나를 끓였고 노스님과 함께 그 라면을 반으로 나누어 식은 밥덩이를 우걱우걱 말아 먹었다.

“약, 묵었나?”

“예.”

왜 그리 잠이 오지 않던지, 다솔이 엄마의 손지갑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던지, 그런데 그날 밤은 또 왜 그리도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던지.

그래도 꽃들은 쏟아지는 눈발 아래 찬찬히 뿌리를 내리고 초록 싹을 가만히 내밀고 있던 걸 떠올릴 때, 지난 밤에 썼던 일기장의 글들을 나직히 암송해 보았다.

잠 못 드는 이에게 밤은 길어라 不寐夜長

지친 사람에게 길은 멀어라 疲倦道長

어리석은 자에게 생사윤회의 고통은 끝이 없나니 愚生死長

바른 삶을 모르기 때문이리 莫知正法

그때 또 다시 세시 반, 탁상시계가 때르르릉 하고 울려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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