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유귀자 시집, 『가장 아플 때는 가장 덤덤하게』

무덤덤함을 가장해 ‘세심한 배려’와 ‘지극한 사랑’ 건네는 시들

조용석 기자 승인 2024.10.18 10:51 의견 0

"일상의 풍경 속에서 시적 대상을 골라 낚아채는 감각이 탁월하고,

그것을 자기 세계로 끌어당겨 자신만의 언어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은유를 구사하는데도 은유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오랜 시간 자신의 감각과 언어를 탁마한 덕분"

- 김남호 시인 해설中에서 -


2021년 『시학과시』 시 부문 신인문학상, 2022년 노산 시조백일장에서 장원 수상으로 시조시인으로도 등단한 유귀자 시인이 첫 시집 『가장 아플 때는 가장 덤덤하게』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71번으로 출간하였다.

유귀자의 시는 짧고 예리해서 비수를 연상시킨다. 상대적으로 긴 시편들도 의미의 장악력과 응집력 때문에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시적 대상을 골라 낚아채는 감각이 탁월하고, 그것을 자기 세계로 끌어당겨 자신만의 언어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은유를 구사하는데도 은유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능란하다는 뜻이고 오랜 시간 자신의 감각과 언어를 탁마한 덕분이다.

유귀자 시의 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은유’라는 비유의 방식에서 나온다. 비유는 단순히 표현의 수단이 아니다. 그 비유를 통해서 시인은 자신의 사유와 철학을 드러낸다. 다른 하나는 ‘진정성’이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시인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도 끝까지 들어주고 이해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시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돼줄 것 같은 신뢰가 느껴진다. 이런 공감과 신뢰를 만드는 게 바로 ‘진정성’이다. 이것이 어떤 꾸밈도 계산도 없는 ‘순수한 진심’이다.

‘진심’만큼 상대를 굴복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없고, ‘공감’만큼 상대를 응원하는 강력한 위로가 없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유귀자 시인은 ‘진심’과 ‘공감’을 버무려서 ‘덤덤함’이라는 필살기를 사용한다. 표제시 「가장 아플 때는 가장 덤덤하게」는 “괜찮아”라는 말의 모범적 용례이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괜찮아”라는 말이 가장 힘이 있을 때는 반어적으로 쓰일 때다. 전혀 괜찮지 않을 때 가장 유효하다는 뜻이다. 그냥 아픈 게 아니라 ‘가장’ 아플 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아플 때는 가장 덤덤하게”라는 이 경구(警句)는 오랜 삶의 경륜에서 얻어낸 뜸 든 지혜이다. 이때의 ‘덤덤함’은 무덤덤함을 가장한 ‘세심한 배려’이자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유귀자 시의 매력을 위의 두 힘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의 시는 은유와 진정성을 동원하여 닿고자 하는 지점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따뜻함’이다. 그냥 따뜻함이 아니라 속 깊은 배려에서 오는 따뜻함이다. 이때의 ‘배려’는 ‘마음 써서 보살피고 도와주는’ 좁은 의미의 배려를 말하는 게 아니다.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질감이고, 세계를 온몸으로 껴안으려는 태도와 자세이다.

시인의 치열함을 얘기할 때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시를 쓰기 위해 사는 사람’, 다른 하나는 ‘살기 위해 시를 쓰는 사람’. 오로지 시를 쓰기 위해 이번 생을 바치는 시인은 존경받아 마땅하겠지만 시라도 쓰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시인을 더 아껴줘야 한다. 유귀자 시인은 후자에 가깝다.

해설을 쓴 박경리문학관 관장인 김남호 시인의 말을 빌리면, "유귀자의 시는 짧고 예리해서 비수를 연상시킨다"며 "일상의 풍경 속에서 시적 대상을 골라 낚아채는 감각이 탁월하고, 그것을 자기 세계로 끌어당겨 자신만의 언어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은유를 구사하는데도 은유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오랜 시간 자신의 감각과 언어를 탁마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시인 유귀자는

1959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21년 『시학과시』 시 부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2022년 노산 시조백일장에서 장원 수상으로 시조시인으로 등단했다. 2024년 필리핀 NSSU 전시회에서 시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2024년 박경리문학관 주최 평사리 문예창작교실 다카시 백일장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현재 시학과시 작가회, 선과예술, 시와숲, 경남시조, 한국문인협회 하동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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