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천불천탑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4.12.24 08:00 의견 0

나도 이제 희망을 갖을 시기가 왔다. 중생으로서 미완의 삶, 이 땅의 어중이 떠중이로 살다보니 꿈을 펼치지 못했다.

희망이 부재했던 날들, 천불천탑을 꿈꾸었다.

운주사에 갔더니 천불천탑이 아니었다. 함께 갔던 사숙스님이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 다 무너지고 흐너져서 그래."라는 말에 공감했다. 그 스님이 "스님도 불(佛)이고 탑(塔)이야."했던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러니 스님도 글 쓸 때 중생의 편에 서서 불(佛)을 조각하듯 탑을 세우듯 하라고."

팔순의 사숙의 말에 걸음을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

세월에 이그러지고 찌그러진 부처님들. 중생들의 참 모습이 아닐까. 말 못하는 벙어리, 눈 뜬 봉사, 두 발로 설 수 없는 앉은뱅이들.

일체의 번뇌를 끊고 반야를 얻으려 했던가. 나도 그런 세월을 살았던가.


영월 창령사 터의 나한전을 보아도 그랬다. 흙을 구워 만든 투박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표정들이었다. 흙의 색깔과 느낌이 남아있는 혀 잘리고 귀먹고 화상 당한 그 얼굴의 친근함에 한참이나 발길을 멈추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니 가슴이 무겁고 답답해왔다.

중생이 아프니 보살도 아프다. 중생이 아프니 부처도 아프다. 중생이 아프니 유마도 아프다. 중생이 아프니 땡중인 나도 아프다.

그렇다고 신통묘용과 기적을 바라지는 않는다.

듣고 맛보고 아는 것만 행하면 된다. 정진하는 것이 신통묘용이고 기적인 것이다. 끼니를 굶고 봄을 씹었던 날들.

그랬다. 나는 꿈꾸었던 천불천탑은 커녕 1불도 세우지 못했다. 하여 노령연금을 모아 화분 108개를 장만했다.

응공(應供)이라고 개도 밥값을 하고 닭도 밥값을 하는데 나는 밥값도 하지 못하고 갈까봐 안거 기간 중에 툭하면 나와 행선(行禪)으로 화분에 흙을 채운다. 그렇다면, 봄이 되면 나는 화분에 어떤 부처님을 심을까. 꿈을 펼칠 수 있게 어서 꽃피고 새 우는 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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