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권리】 밤 차박캠핑, 우동, 기계 면 뽑는 수동 제면기

혜범 스님/원주 송정암 주지 승인 2025.01.21 08:25 의견 0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새로 세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쳐들어갈지도 모른다며 도반에게 전화가 왔었다. 삼년 만에 나타난 기승(奇僧)이었다. 괴승이랄까. 스무살 때 만나 육십대 후반이 되었으나, 어디 사는지 무얼하고 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도반이었다. 물어보았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살면서 한 번도 내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 스님이었다. 오면 불사를 도와준다 거나 농사를 거들어 주었을 뿐.

"반농반선 잘하고 있어?"

"잘 하고 있지. 고추모종 내려고 비닐하우스 새로 하고 있어."

“얼마나 더 해먹으려고? 하긴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이라고. 천하만물(天下萬物)은 무비선(無非禪)이요, 세상만사(世上萬事)는 무비도(無非道)인줄 알고 있지? 놀면 뭐해? 죽을 때가지는 뻐드득거려야지.”

통화내용은 그랬다. 그런데 기다려도 도반은 오지 않았다.

"스님이 죽으면 내가 스님 화장터에 가서 두 팔을 벌리고 덩실덩실 춤을 춰줄게."

도반이 내게 말했었다. 어차피 다비식은 내 주제에 돈이 많이 들어 못 할 것이고 쓰레기 내다 버리듯 화장터에 가서 불로 태워버릴 때 춤을 춰 주겠다는 거였다. 나는 그가 죽어도 그렇게 해주지 못하겠다 했다.

양산에서 오고 있다는데 혹여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지 했는데 네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자고 날이 밝으면 오겠지, 했는데 산중 어디선가 고라니가 울었다. 고라니에 이어 언제나 암자를 휩쓸고 다니는 진도견 해탈보리가 짖었다. ‘무슨 일이야?’하며 다시 일어서서 불을 켜고 문 밖으로 나와 보니 별들이 하늘을 펼치고 앉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다시 보리가 왕왕 짖어댔다. 그리고 새벽별과 함께 암자로 차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밤중에 뭐하는 짓이야?"

"타."

"이 밤에?"

그때 나는 피식 웃었다. 봉고차량이었다. 뜻밖에도 차에서 내린 건 도반이었다.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며 내가 '뭐야?'하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뒷좌석을 개조해 침대처럼 누울 수 있게 이불이 갈려 있었다.

"크으. 그런데 이 차는 뭐야?"

"양머리 내걸고 개고기 팔러 다니고 있어."

"....크으."

절은 상좌에게 물려주고 차에다 주렁주렁 염주며 테이프, cd, 향이며 팔찌 같은 불교용품따위들을 싣고 돌아다니며 팔러 다닌단다. 그러면서 전국에 흩어진, 은혜를 입었던 이들을 찾아다닌다는 거였다.

"가자."

해 뜨는 걸 보러 가자는 거다. 근처에 두물머리가 있었다.

해 뜨는 걸 보고싶어 해서 두 물이 셋으로 갈라지는 곳으로 데려가 일출을 보여주곤 했다. 차를 대놓고 해가 뜨는 거, 해가 지는 곳을 볼 수 있는 나만의 자리였다.

옷을 갈아입고 따라 나섰다. 그때, 절에서 키우는 진돗개 해탈보리가 따라 나섰다.

"그래, 너도 갈래? 함께 가자."

"스님은 무슨 무슨 재미로 살았어?"

내가 물었다. 젊은 날, 나는 늘 부정적이었다. 삐딱한 염세주의자였고. 그러던 내가 바뀐 건 도반 때문이었다.

"농즉생(農即生)이라는 스님, 확철대오 깨달아보겠다며 화두 정진하는 스님, 주야장천 염불만 하는 스님들 관찰하면서."

".....그래 어땠어"

"심각하게 살고 복잡하게 살던 놈들은 다 뒤졌어."

"...."


그랬다. 그는 한번도 내게 곡차 마시고 질퍽거린 적도 없었고 애인을 데리고 온 적도 없었다. 그리고 재물을 자랑한 적도 없었다.

"다 맹인 코끼리 만지기’식, 군맹모상(群盲評象)이었지 뭐. 그런데 뭣이 중한데?"

나는 도반의 어눌한 말투에 헛웃음을 삼켰다.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젖내 나더라고. 유치하고 말이야."

그랬다. 사느라고 진흙밭에서 허우적거렸다.

한 삼십 년 전이었나, 그가 내게 왔었다. 마침 국수 수동 제면기 하나를 선물 받아 밀가루에 콩가루, 쌀가루를 반죽해서 그에게 대접해 주었었다. 손으로 치대 반죽하지 않고 가루를 반죽해서 손으로여러 번 돌리면 반죽이 되었다. 또 그 반죽한 걸 면으로도 뽑을 수 있는 기계였다. 헌데 그가 수동 제면기를 탐내는 거였다.

"안돼."

했지만 '우리 노인네가 참 좋아할텐데.'하는 말에 결국 그가 갈 때 나는 그 제면기를 박스에 싸서 함께 선물로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잘 나가던 스님이었다. 그러나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도 스님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의 여동생도 어느 날 스님이 되었다. 그는 어머니의 절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는 우동이나 칼국수를 먹고 싶을 때면 쩝쩝 그 수동제면기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 게 바로 나였다.

"......어느 것이 적멸, 열반, 입적인지요?"

내가 운전을 하는 도반에게 슬쩍 물었다.

"아간운산(我看雲山 역망아(亦忘我)라, 구름과 산을 보다가 나까지 잊어버리는 경계?!"

"....도인 나셨구만."

"문을 여니 꽃이 웃으며 다가오고(開門花笑來) 광명이 천지에 가득 넘쳤지(光明滿天地)!"

"좋았겠다. ....뻥은 여전하시구먼."

차가 섬강을 내려서고 있었다. 절에서 강까지는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차 마실까?"

"무슨 차?"

"북두칠성으로 은하수 길어다 달인 차(北斗星河煮夜茶)."

"크으."

일회용, 달달이 믹스커피를 마셔도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다. 대한(大寒) 이었다. 살얼음이 곳곳에 보였다. 그러나 춥지는 않았다. 해뜨는 시간은 7시 45분경이라고 했다. 헌데 날이 흐려 해 뜨는 걸 보지 못할 거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눈이나 비가 올 듯한 날씨였다.

차 밖은 영하 7도였다. 가뭇가뭇 새벽 바람이 불고 있었다.

차를 마시고 나니 '출출하지?'하고 도반이 내게 물었다. 뜻밖의 차박, 캠핑에 감격해 하고 있는데 그는 이내 2차 행동에 옮겼다. 차 뒷좌석 문을 열더니 '이건 밀가루. 이건 쌀가루, 이건 콩가루'해가며 넓은 양푼에 우유까지 준비해 우동을 해주려고 준비를 하는 거였다.

"잘 치대야 해."

"크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침공양을 대접 받고 다시 절로 돌아왔는데 도반이 불쑥 차창 밖으로 내게 네모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뭐야?"

"나 가면 열어봐."

그새 친해졌는지, 해탈이, 보리가 절을 벗어나려는 도반의 차를 보고 가지 말라며 컹컹 짖어대고 있었다. 차문 밖으로 내민 박스를 열어보니 우동, 기계 면 뽑는 수동 제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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